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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 국회의 가는 길|6·8 총선…한 표의 투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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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러 가지 잡음 속에 진행된 6·8 총선거는 많은 이상을 결과하고 끝났다. 의회정치의 중추기구를 구성하는 이번 선거는 지난 번 대통령 선거 때와는 그 양상을 크게 달리하고 있다. 유권자의 정치의사는 이 선거에 어떻게 투영되고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또 그에 의해 정치는 어떻게 변할 지를 어림해 본다. <정치부>
선거운동이 한창일 때부터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던 6·8 총선거는 그 양상과 결과에서 결국 「이상」을 가져오고 말았다. 공화당이 개헌 선을 초과하리라는 것은 공화당 스스로도 예측하지 못한 일. 4·19 혁명 후에 실시된 5대 국회선거에서 민주당이 개헌 선을 넘겼던 일은 그 당시의 여건으로 보아 있음직한 일이었으나 그 밖의 정상선거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기형 득표인 것이다.
여당은 농촌의 지지표를 받고 야당은 도시의 지지를 받는다는 전근대적 선거 추세는 지난 번 5·3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퇴색할 기미를 보였으나 6·8 선거에서 완전히 무산되어버렸다. 어딘가 민주정치의 성장이 뒷걸음질 친 느낌이다.
야당은 6·8 총선을 「사상 최악의 부정선거」로 단정하고 있다.
매수와 중상, 탈법과 폭력이 난무한 이번 선거는 「가장 타락한 선거」라고 불리게끔 되었다. 선거의 타락은 54년에 실시된 3대 국회의원 선거 때부터였다. 이 박사 집권 8년째의 일이다. 6·8 선거의 양상이 그 때와 비슷하다면 민주정치의 성장은 10년 이상 퇴화한 것일까.
지난 대통령 선거 때는 여당의 도시 진출과 전국적인 지역 표 차가 특색으로 나타났고 이것은 유권자의 정책비평, 또는 이해동기에 의한 투표경향으로 평가되었었다. 여기에 힘입어 공화당은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서 전례 없던 승리를 거두리라 생각했고 또 그렇게 노력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 반대, 서울과 부산에서 참패를 했고 대전·인천·목포·원주 등 도시에서 패배, 광주는 현상유지, 대구서는 1석을 빼앗기고 말았다. 정치의식이 높고 이해에 민감한 대도시 유권자의 지지를 받지 못한 공화당은 비록 의석 3분의2 이상을 확보했지만 그것은 결코 「명예로울 수 없는 승리」다.
공화당은 정책면에서 냉혹한 심판을 받았거나 아니면 선거 자체가 정책 이전의 문턱에서 유린되었을 것이라는 결론이다. 선거의 부정과 혼탁은 대도시보다 농촌에서 더 손쉽기 때문이다. 보수정당끼리의 대결이었기 때문인지 선거전은 아무런 쟁점도 없이, 선심과 지방사업 공약만의 경쟁이었다. 마치 지방의원 선거와 같던 국회의원 선거는 종반에 이르러 관권 금력의 폭주로 과열되고 끝내 개표과정에서까지 소란이 빚어졌다.
이것은 선거를 치르는 후보자와 정당 모두의 정치적 죄과이겠지만 그 가운데서도 정부·여당의 책임이 더 크다. 특히 박 대통령과 장관들의 지나친 대여간접지원은 지방공무원의 심리를 자극, 여당 후보의 낙선이 자신의 지위에 악영향을 줄지도 모른다는 자위적인 선거개입을 유도했을 지도 모른다.
또 이른바 정책지구의 집중지원이라는 공화당의 배려도 그 손익에 앞서 명분과 부작용에서 비판받아야 할 것이다.
어쨌든 정부가 입버릇처럼 외던 준법 공명선거는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선거상황을 돌아본 「언커크」 대표도 일부 지방에서 부정선거가 자행되었음을 확인했다. 아마 대외적으로 비치는 한국의 정치상도 조금은 손상되었을 것 같다. 서울과 부산에서 크게 이긴 신민당도 자위할 수는 없다. 그 이유는 첫째 대도시의 투표율이 지난 번 5·3 선거 때보다 훨씬 낮아, 사실상의 지지도는 별로 높은 것이 아니고 농촌에서는 의성과 창녕에서 이겼을 뿐이며, 둘째 신민당에 던져진 지지표 가운데는 적극적인 지지 외에 반공화당이라는 소극적인 지지표가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군소 정당의 완패와 전적후보자가 모두 냉대 받은 것도 특색이다. 자유·민주 양당은 3석 이상 확보, 5% 이상의 득표를 기대했고 일부에서도 그 가능성을 조금은 점치고 있었으나 결과는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유권자는 이제 군소 정당을 아예 돌아보지도 않게 되었으며 정치는 양대 당으로만 정돈케 되었다. 이번 「이상」 선거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될 것이 있다면 단지 군소 정당 후보와 전적 후보의 냉대뿐일 것 같다.
6·8 총선이 가져온 공화·신민 양당의 극단적 대립은 정국의 앞날을 검게 색칠했다. 신민당은 이번 선거를 최악의 부정불법 선거로 단정, 최대한의 정치적 법적 투쟁을 선언했다. 정치적 투쟁은 관권을 여당지원에 총동원시킨 원천적 책임을 행정부에 묻는 것이며 최악의 경우 당선자의 국회의원 등록을 거부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이며 법적 투쟁은 선거무효 소송을 제기, 정치적 투쟁과 병행시키는 것이다.
공화당은 신민당의 태도를 조심성 있게 주시하고 있으며 현 단계에서 신민당이 국회를 「보이콧」하는 극한사태로까지 곧장 달음박질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사실상 신민당도 국회 「보이콧」까지는 고려하지도 않은 것 같다.
그러나 투표진행 중 또는 투표가 끝나자마자 사실상 선거를 포기했던 낙선자들, 그리고 30일 동안 격렬하고 힘겨운 싸움을 치른 지역구 후보자들의 적의로 굳어진 감정은 좀처럼 누그러질 것 같지 않다. 따라서 최소한 유진오 대표위원이 밝힌 대로 관권의 총동원과 유령유권자 조작 등 문제를 들어 선거를 관리한 내각에 화살을 집중할 것만은 틀림없다.
이 경우 정부나 공화당이 신민당 측 요구를 받아들여 정치적 책임을 떠맡고 나서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으며 결국 여·야는 팽팽한 대립의 불씨를 개원되는 새 국회로 연장해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민당의 6·8 총선 투쟁이 국회에서 본격화할 것은 이미 명백해지고 있다. 선거부정을 제거하기 위한 국회조사단, 구성, 대 정부 질문, 그리고 불법선거의 책임자에 대한 문책 등 할 수 있는 모든 원내 투쟁은 이미 예고하고 있다. 공화당은 대비책으로서 선거법 개정을 내놓고 있으나 이것은 신민당 측의 요구와는 먼 거리에 있다.
어쨌든 6·8 총선의 뒤처리는 오랫동안 여·야의 쟁점으로 연장될 것이며 7대 국회의 원활한 운영을 막아선 장벽의 하나가 되고 말았다.
여와 야의 균형이 깨뜨려진 국회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개헌 선을 확보하고도 남음이 있는 공화당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김종필 공화당 의장은 『신중한 국회운영』을 다짐하고 있기는 하지만 총선 뒤처리를 둘러싼 대립은 물론 모든 수단과 힘(야당은 이를 불법 부정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을 총동원한 이번 선거를 겪은 신민당은 공화당에 대해 근본적인 불신을 갖고 있어 여와 야의 관계개선은 쉽지 않을 것 같다.
결국 대립이 잦아지고 여당은 방침을 단독으로 밀어가게 될 때 수가 모자라는 야당은 투쟁을 원외로 몰고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우기 신민당은 극소수만이 원내로 진출했고 이른바 공화당의 정책지구 설정까지 겹쳐 상당수의 실력자 「클라스」가 원외에 남아있어 힘은 원 외쪽에 기울어져 있다.
따라서 원내활동은 원외의 세력에 제약을 받게 될 것이고 원외의 힘은 이 같은 야당의 원외투쟁을 채찍질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여당의 지나친 안정세력은 오히려 국회로 하여금 정부의 시녀 역을 떠맡게 하고 정치를 국회 밖으로 몰아내는 원심적 불안정의 위험을 더 많이 내포했다는 역설이 성립될 수 있다.
71년도의 박 대통령 후계경쟁이란 공화당의 불씨는 비대로 인해 더 일찍 불붙게되고 외부의 것보다 더 심각하고 어려운 문제를 내부의 파쟁에서 겪게 될 지도 모른다.
신민당도 과도적인 당 체제의 정상화라는 개편을 치러가야 하고 이 개편은 5·3과 6·8 선거에서 나타난 군소 야당의 몰락으로 인해 내부는 물론 군소 야당에 속했던 인사와 정쟁 법 미 해금자의 정치포석까지 겹쳐 어려운 고비를 넘기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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