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젓가락 예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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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기술의 나라라는 독일이지만 치과의사들의 손재주는 영 시원치가 않다. 치과의사 잘못 만나 고생하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자주 본다.

언젠가 한 한국인이 치과를 갔는데 마침 치과의사가 서울에서 해온 금니를 한참 들여다 보더란다. 그러더니 "이건 금니가 아니라 예술"이라며 감탄했다고 한다.

치과의사뿐이 아니다. 이.미용사나 가게 점원의 선물 포장도 우리 눈에는 어설프기 짝이 없다. 하기야 굵기가 우리 두배는 되는 손가락으로 아무리 용써봐야 우리 손재주를 따라올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손재주는 자타가 공인한다. 1977년부터 91년까지 기능올림픽 9연패를 비롯, 모두 12차례 우승하면서 우리 손재주는 세계적으로 입증됐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우리만 그런 게 아니다. 우리에 앞서 일본이 그랬고, 우리 뒤를 중국이 따라 오고 있다.

이같은 아시아의 저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서양의 많은 학자들은 젓가락에 주목한다. 일찍이 아놀드 토인비는 한.중.일에다 베트남을 포함시켜 이 네나라가 세계를 제패할 날이 올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모두가 유교전통이 강하고 젓가락을 쓴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렇게 보면 아시아인들의 손재주는 바로 매일 사용하는 젓가락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셈이다.

실제로 젓가락을 사용할 때 손가락과 팔의 관절 30여개와 근육 50여개가 동원된다고 한다.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할 때보다 배 이상 운동량이 많아 두뇌발달에 좋다는 것이다.

특히 김치를 찢거나 콩자반을 몇알씩 뜨는 것은 물론 청포묵까지 흘리지 않고 집어올리는 우리의 젓가락 솜씨는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할 만하다.

이처럼 젓가락에서 비롯된 우리 손재주가 최근 본격적으로 산업화하고 있다. 가전분야는 물론 반도체와 휴대전화, 초박막 액정표시장치(TFT-LCD) 모니터 등 경박단소(輕薄短小)로 대변되는 첨단 분야에 우리 손재주가 십분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다. 탁구.양궁.배드민턴.사격.골프 등 손을 주로 사용하는 스포츠 종목에 우리 선수들이 유독 강하다.

엊그제 국내 기술진이 세계 최소형 캡슐 내시경을 개발한 것도 다 '젓가락 손재주'의 산물이라 하겠다. 나아가 21세기 첨단산업으로 불리는 나노기술 분야에서도 '젓가락 손재주'가 유감없이 발휘되길 기대해 본다.

아직 포크를 좋아하는 딸 아이에게 하루빨리 젓가락 사용법을 제대로 가르쳐야겠다.

유재식 베를린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