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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디에게 혁신은 재미, 그래서 뒤집어 입는 모피코트 탄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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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 예술대학에서 열리고 있는 `펜디:또 다른 아트의 세계` 전시회. 1925년 작은 모피 핸드백 가게에서 시작한 펜디 디자인의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사진은 70년대 이후 선보인 펜디 모피의 대표작 24점 가운데 구조와 색채를 강조한 작품들이다. [사진 펜디]

“낫싱 이즈 임파서블(Nothing is impossible).”

펜디의 철학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피에트로 베카리(45) 펜디 회장은 이렇게 답했다. “불가능은 없다”고.

지난 2일 일본 도쿄 예술대학에서 열린 ‘FENDI: UN ART AUTRE : 또 다른 아트의 세계’ 전시회(4월 3~29일) 개막행사에서다. ‘불가능은 없다’는 펜디의 철학을 전시회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베카리 회장은 “이 철학은 펜디에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을 이끌고 온 원동력”이라고 했다. 변화와 혁신. 국내에선 언제부터인가 ‘피곤하고 어려운 것’이라는 일종의 피로현상을 보여주는 단어가 됐지만 펜디에게 혁신이란 ‘재미’다.

“펜디의 로고인 ‘더블 F’, 즉 대문자 F 두 개는 ‘Fun Fur’의 이니셜을 딴 것입니다. 재미있는 모피. 1965년 펜디에 영입된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만든 로고예요. 당시 모피 안감에 이 로고를 새겨 넣었어요. 라거펠트는 ‘펀(fun)’하다는 건 가볍고, 변화할 수 있고, 이렇게 저렇게 바꿔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피를 섞어보고 태워보고 휴지조각처럼 다룬 작품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어요. 안감 없는 모피 코트도 이렇게 탄생된 거죠. 뒤집어서도 입을 수 있게 하려고요. 어떨 땐 코트 안쪽이 바깥쪽보다 더 좋은 작품들도 있어요.”

가볍고 패셔너블한 모피 개척

1 `작품명 골드 24K` 2008년 작품. 밍크털에 24K의 금을 압착해서 만든 말 그대로 황금모피 코트 2 `파이어맨`. 1979년 작품. 몽골리안털을 붉게 염색했다. 3 `PVC`. 2003년 작품. PVC 소재와 흰색의 밍크털을 조합해서 만든 코트

전시장의 작품들을 보자. ‘작품명 골드 24K’. 2008년 작품이다. 밍크털에 24K의 금을 압착해 만든 코트로 진공상태에서 압착했기 때문에 무중력 상태가 아니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말 그대로 황금 모피 코트다.

‘초콜릿’. 1999년 작품이다. 갈색의 고급 밍크털을 안감으로 사용하고 겉감은 번쩍이는 파란색으로 염색한 가죽으로 만들었다. 뒤집어 입는 게 더 비싸 보일 듯했다. 이것도 재미라면 재미다.

`가젤` . 2012년 작품. 사막에 사는 동물인 가젤을 연상케한다

‘파이어맨’. 1979년 작품. 몽골리안 털을 붉게 염색했다. 소방수가 입을 듯한, 타는 듯한 붉은색 원피스다

‘PVC’. 2003년 작품으로 PVC 소재와 흰색의 밍크 털을 조합해 만든 코트다. 코트 가운데 금속 지퍼가 달려 있다.

‘인세인(Insane)’. 1993년 작품이다. 위즐·세이블·밍크·비버 등 다양한 동물의 털을 섞어 만들었는데, 코트라기보다 넝마처럼 보인다. 제목대로 미친 사람이 입을 듯한 옷이다.

‘라비올리’. 1982년 작품. 이탈리아식 만두인 라비올리 모양으로 모피를 잘라 이어 붙인 옷이다.

‘가젤’. 2012년 작품. 사막 지역에 사는 사슴 닮은 동물 가젤을 연상케 하는 원피스형 모피 코트. 대부분 작품들이 재미있으면서도 초상식적이다.

“원래의 모피는 부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크고 두꺼울수록 비싸고 좋은 모피로 인정받았어요. 펜디가 처음 가볍고 패셔너블한 모피를 선보이자 사람들은 제품을 집어 던지며 ‘이건 럭셔리가 아니다’라고 비난했죠. 특히 모피 제작의 심장부였던 미국 뉴욕 7번가에서는 ‘이탈리아 펜디는 모피를 모른다. 모피를 망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어요. 하지만 비난은 오래가지 않았죠. 뉴요커들이 펜디의 모피를 사 입기 시작했거든요. 결국 펜디는 미국 시장에 최초로 진출한 이탈리아 브랜드 가운데 하나가 됐습니다.”

피에트로 베카리 펜디 회장.

베카리 회장은 “로마의 ‘퍼(fur) 아뜰리에’에는 소재 개발만 담당하는 3명의 연구원이 있다”고 했다. “이들은 전 세계를 다니면서 새로운 소재를 찾아 다니고, 이 소재를 모피와 조합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합니다. 지난 시즌에는 스쿠버 다이버들이 입는 잠수복에 쓰이는 소재와 모피를 결합한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베카리 회장은 루이뷔통 그룹에서 커뮤니케이션 마케팅을 총괄하다 1년 전 펜디 최고경영자(CEO)로 왔다. 이번 전시회는 그에게 새로운 출발점이기도 하다.

“펜디의 장점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펜디는 모피 시장의 리더입니다. 전시회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패션은 지나가는 거지만 럭셔리(Luxury)는 영원하다는 겁니다. 펜디의 모피 제품을 구매하면 평생 입고 딸에게 물려줄 수 있다는 거죠.”

장인정신은 혁신과 함께 펜디 철학의 양대 축이다. 베카리 회장은 모피와 함께 핸드백 분야에선 ‘셀러리아’ 라인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했다. 셀러리아는 장인이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 제작하는 최고가 라인이다.

90년 역사 재현한 전시회장

펜디 부부에 이어 가업을 이어받은 다섯 딸들. 60년대 한 패션쇼에서 찍은 사진이다.

패션쇼 대신 전시회를 일본의 예술대학교 안에서 개최한 것에도 이유가 있다. 예술과 창조와 장인의 만남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행사장은 그런 펜디의 역사가 한눈에 드러나도록 꾸며졌다.

행사가 열린 날 도쿄엔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수백 년된 나무로 가득한 도쿄 예술대 숲속 박물관 2층에 마련된 전시회장 입구는 1925년 당시 로마의 작은 가게 ‘펜디’를 그대로 재현했다. 이어 긴 터널. 양쪽 벽에 패션쇼 장면, 광고 이미지 등 90년에 가까운 펜디의 역사를 담은 디지털 영상들이 명멸했다. 터널 끝엔 모피로 만들어진 장막이 드리워져 있었다. 여우 털로 만들어진, 푸른 빛이 도는 갈색의 모피 장막. 장막은 새 털처럼 가벼웠다. 모피가 무겁고 두껍다는 인식을 깨뜨리는 것이었다. 장막을 걷으니 널찍한 전시장이 나타났고 1970년부터 올해까지 선보인 24점의 모피 대표작이 전시돼 있었다. 관람객들은 제품을 360도 각도에서 확인할 수 있고, 작품 바닥에도 거울이 설치돼 있어 안쪽까지 볼 수 있다.

이곳을 지나면 장인들이 모피 제작 과정을 시연하는 방이다. 가죽을 얇게 자르는 장인, 재봉틀로 이어 붙이는 장인 등 장인들은 각자의 일을 하면서 방문자들의 질문에 답하거나 함께 사진을 찍었다.

VIP 손님 100명을 따로 초청한 만찬장은 럭셔리 제품 마케팅의 진수를 보는 듯했다. 만찬장은 온통 분홍색 벚꽃으로 장식돼 있었다. 올해 도쿄의 벚꽃은 예정보다 열흘 이상 일찍 개화했다. 펜디는 열흘 전에 만개한 벚꽃을 모두 냉동시켰다가 이날 만찬에 사용했다. 5~10인용 테이블 여러 개가 놓여지는 보통의 연회장과 달리 하나의 커다란 테이블에서 100명이 모두 함께 먹도록 돼 있었다. 펜디 측은 “모든 손님이 중요하기 때문에 헤드테이블을 따로 설치하지 않으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도쿄=박혜민 기자

◆젊은 펜디 부부가 세운 펜디

88년 전 모피·핸드백 가게로 출발…1965년 라거펠트 영입 후 쑥쑥 커

출발은 작은 모피·핸드백 가게였다. 1925년 젊은 아두아르도 펜디와 그의 아내 아델 펜디가 로마의 비아 델 플레비치토 거리에 연 작은 가게가 ‘펜디’의 시작이었다. 솜씨 좋은 장인이 만드는 질 좋은 모피와 가방은 당시 로마의 신흥 부유층 사이에서 인기를 얻었다.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46년 펜디의 다섯 딸(파올라·안나·프랑카·카를라·알다)이 가업을 이어 받았다. 이들은 65년 파리의 유명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를 영입했다. 라거펠트의 재능은 펜디가(家) 다섯 딸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 입어 꽃을 피웠다. 파격적인 모피 제품들이 라거펠트의 가슴과 머리, 펜디 장인들의 손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펜디는 77년 의류 브랜드를 론칭했고, 94년 셀러리아 라인을 선보였다. 안나 펜디의 딸이자 스타일 매니저였던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가 97년 선보인 ‘바게트 백’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바게트 빵처럼 팔 밑에 끼고 다닐 수 있는 작은 가방이다. 2004년 펜디는 LVMH 그룹에 인수됐다. 2007년 세계 최초로 중국 만리장성에서 패션쇼를 열었고, 2011년엔 한강 새빛둥둥섬에서 패션쇼를 했다. 현재 펜디는 전 세계 35개국에 190여 개의 매장이 있다. 지난해부터는 이탈리아 트레비 분수 개·보수 작업을 무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에 대해 베카리 회장은 “펜디는 이탈리아 브랜드다. 우리는 이탈리아 거리를 걸으며 영감을 얻는다. 이탈리아 브랜드로서 이탈리아를 위해 뭔가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 세계적인 모피 반대운동에 대해 그는 “나는 그들의 입장을 존중한다. 그들도 우리를 존중해 주길 바란다. 우리는 보호 대상 동물을 결코 사용하지 않으며, 동물들이 농장에서 제대로 대우받도록 한다. 모피를 사용하는 건 원시시대부터 있던 일이다. 덧붙여 인조가죽보다 천연가죽이 환경에 덜 유해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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