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위크]디지털 복합기 시대를 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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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무기기들이 한데 통합돼 있다면 더 효율적인 업무 처리가 가능하지 않을까. 이런 소비자들의 욕구를 간파한 사무기기社들이 1996년부터 복사기와 프린터를 통합한 사무기기를 선보이기 시작했고 최근엔 다기능 디지털 복합기도 출시하고 있다.

국내 사무기기 시장에서 디지털 복합기의 비중은 아직 10%에도 못미치지만 수출시장이 커지고 내수량도 증가할 것으로 기대되면서 사무기기社들은 생산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국내 복사기 업체로는 한국 후지제록스와 신도리코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으며 롯데 캐논이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다.

한국 후지제록스는 3년 간의 자체 연구·개발 끝에 지난 1월말 새로운 디지털 복합기를 출시했다. 복사·프린트·팩스·스캔 기능이 통합됐을 뿐 아니라 디지털화된 문서를 네트워크를 통해 여러명이 공유할 수도 있다. 이런 성과를 일궈낸 데는 다카스기 노부야(高衫暢也·60) 한국 후지제록스 회장의 공이 크다.

한국 후지제록스는 74년 한국 동화산업과 일본 후지제록스가 각각 50%씩 출자해 탄생했으나 98년 IMF 경제위기로 회사 재정이 악화되자 일본 후지제록스는 한국 후지제록스 지분을 1백% 인수한 뒤 회사에 안정을 가져올 ‘해결사’로 다카스기 회장을 한국에 파견했다. 김혜수 뉴스위크 한국판 기자가 다카스기 회장을 만났다.

98년 일본 후지제록스가 1백% 지분을 갖는 구조로 바뀌었는데 당시 한국 후지제록스의 위기 원인은 무엇이었다고 보나.

크게 사업 구조와 경영 스타일을 지적할 수 있다. 우선 사업 구조면에서 기존 한국 후지제록스는 질보다 양과 규모에 집착했다. 하드웨어인 기계에 대부분을 투자하면서 소프트웨어인 애프터서비스는 소홀히 했다. 경영면에서도 경영진과 사원들 간에 의사소통이 잘 안돼 사원은 말할 것도 없고 간부진조차 회사 경영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경영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민첩하게 대응하는 것임을 알았어야 했다.

회사 경영방침과 실적은.

우선 경영의 투명성을 보장해 노사가 상호신뢰를 갖도록 하는 데 역점을 뒀다. 그 결과 임금교섭이 무협상 타결됐고, 자산수익률도 99년 이후 계속 상승곡선을 보이고 있다. 우리의 이같은 노력은 세계 시장에서도 인정받아 지난해엔 98년과 비교해 수출이 배 이상 증가했다.

후지제록스 그룹차원에서 ‘프린터 퍼스트’ 구호를 앞세우고 있는데 그 배경은.

컴퓨터가 보편화되면서 프린터가 복사기를 대체하는 추세여서 수요가 많은 프린터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 한국 후지제록스의 시장점유율은 복사기 전체 시장의 30%, 디지털 복합기 시장의 경우 70%에 가깝다.

디지털 복합기가 가격이나 효율성 면에서 경쟁력이 있나.

사무기기는 기본적으로 소비재가 아니라 생산을 창출하는 제품이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디지털 기기의 가격은 복사기·프린터 등 각각의 아날로그 기기를 다 합친 것보다 30∼40% 비싸지만 대신 공간을 적게 차지하고 기기 간 연결성을 증진시켜 시간과 노동력을 절약할 수 있다. 장기적으론 총비용이 훨씬 적게 든다는 얘기다. 근시안적으로 당장의 푼돈을 아끼려는 보수적인 기업들 때문에 마케팅이 쉽지는 않지만 직판체제를 통해 판매직원들을 별도로 교육시키고 이동차량에서 일반인들에게 시연해 보이는 등 적극적인 마케팅 전략을 쓰고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공식 후원업체로 선정됐는데 일본인으로서 일본쪽을 더 지원하지는 않나.

그렇지 않다. 한·일 월드컵 지원에 쓰이는 레이저 프린터와 기술서비스 요원의 수는 한·일 간에 똑같다. 경쟁보다 협력관계가 우선이라는 판단에서다. 이번 월드컵에서 공동 마케팅을 통해 대회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한·일관계도 우호적으로 바뀌었으면 한다.

한국 내 생산시설로 한국인에 의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한국기업’임을 강조하는데 자본 구성이 1백% 일본 지분이고 제품도 일본이나 중국에서 생산되는데 한국기업이라고 할 수 있나.

1천2백여명의 한국 후지제록스 직원 중 일본인은 5명에 불과하다. 또 생산은 중국에서도 하지만 한국에서 중국으로 수출하는 제품이 더 많다. 기본적으로 비교우위에 있는 제품들은 중국이나 일본 후지제록스와 특화해 서로 주고 받는다. 한국 후지제록스는 한국 소비자들을 우선시하고 한국의 사무 능률을 높이는 게 목표인 만큼 한국기업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지난해 6월 서울대 국제경영연구센터 조사에서 한국 후지제록스가 한국경제 기여도 우수기업 10위에 오른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외국 기업인으로서 한국의 투자환경을 진단한다면.

지난해 말 김대중 대통령이 한국을 동북아 투자중심지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발표했지만 한국에 대한 외국투자가 둔화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미국·유럽 다음의 투자국으로 꼽히는 일본의 투자가 둔화된 가장 큰 이유는 한국보다 중국 투자가 유리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은 외국인들의 투자 부진 이유를 잘 분석해야 할 것이다.

출처:뉴스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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