徐대표 "물러나기도 힘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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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직 사퇴 의사를 밝힌 한나라당 서청원(徐淸源.얼굴)대표가 보름 정도 일정으로 미국여행을 떠난다. 설연휴 직후인 다음달 2일부터다.

그가 미국에 있는 동안 국내에선 임시국회가 열린다. 총리인사 청문회와 함께 본회의에서의 당대표 연설도 예정돼 있다. 당내에선 지도체제 등에 대한 개혁특위(위원장 洪思德) 최종안이 확정된다.

그는 이날 긴급 소집된 최고위원회의에서 우선 대표 권한대행을 지명하려 했으나 참석자들이 강력히 만류해 하루 뒤로 연기했다. 회의엔 徐대표와 이상득(李相得).하순봉(河舜鳳).김정숙(金貞淑)최고위원과 김영일(金榮馹)사무총장.이상배(李相培)정책위의장이 참석했다.

▶徐대표=전당대회에서 선출된 대표는 사표를 낼 곳이 없기 때문에 사퇴란 표현은 적절치 않고, 권한대행을 임명해 당무를 맡기겠다.

▶김정숙 최고위원=세상에 그런 말이 어디있나. 결국 사퇴한다는 얘기 아닌가. 대표가 흔들리면 다른 최고위원들도 감당할 수 없다. 계속 당을 맡아달라. 권한대행 지명 방침을 철회하라.

▶김영일 사무총장=대표가 관둔다면 우리(당3역)도 당사에 안나오겠다.

▶徐대표=해외에 다녀 오겠다. 권한대행은 내일 임명하겠다.

徐대표의 사퇴방침은 다른 최고위원, 당3역의 동반 사퇴론까지 나올 정도로 한나라당에 충격을 주고 있다. 4분5열된 패전 야당의 관리자로 그만한 사람이 없다는 게 다수 의원들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徐대표는 당 차원에서 대선패배와 재검표 결과에 대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다고 한다. 당내 일부에서 책임론을 주장하는데 당당하게 맞서 바람막이가 돼준 중진들이 없었다는 점도 그를 힘들게 했다고 한다.

徐대표는 괴로운 표정이다. 대표직을 유지하자니 책임론의 화살이 계속 날아오고, 관두자니 당이 마비상태에 빠지겠고…. 그가 자기 대신 당을 이끌 권한대행을 지명하겠다고 하면서도, 바로 대표사퇴를 공식 선언하지 못하는 이유다. 徐대표는 30일 선출직 최고위원들 가운데 최연장자인 박희태(朴熺太.65)의원을 대행으로 지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은 혹한의 북극해를 표류하는 타이타닉호처럼 중심을 잃고 헤매고 있다.

전영기 기자 <chuny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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