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정부각료의 선거운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현행 헌법은 소위 행정부의 안정을 위하여 강력한 대통령중심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서 국회의원이 행정부에 참여하지 못하는 동시에 행정각료 역시 정치적 언행을 삼가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헌법정신과 규정이 잠식되어 가고 있는 듯한 인상이 짙어가고 있음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두드러진 예로서 대통령 및 국회의원 선거에 관한 법의 두 시행령을 개정하여 정부각료가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한 5월 9일자의 국무회의 결정을 들 수 있다. 동 개정에 의하면 이제까지 금지되어있던 대통령, 국무총리, 처·원·부의 장·차관, 그리고 기획조정실장 등의 선거운동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서 정부 대변인은 『단순한 현행법령의 불합리한 점을 시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원칙적인 견지에서는 도리어 개정이 심히 불합리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우선 왜 이 시점에서 그러한 개정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중앙선관위가 선거법에 위반된다는 견해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대통령 선거기간 중에 정부각료들이 업적PR을 빌어 유세를 벌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국회의원 선거를 눈앞에 두고 이런 개정을 기도한다는 것은 각료들의 득표공작 독려 및 공약제시를 가능케 하려는 의도로 오해받기 똑 알맞을 것이다.
둘째로 법은 모든 국민을 위해서 있는 것이요, 따라서 그 규정은 여당과 더불어 야당에 대해서도 같은 혜택을 주어야 할 것이다. 각료의 선거운동이 여당에 대해서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 명백한 만큼 불공평한 특정규정은 결코 「합리적」인 것이라 할 수 없다. 자유당시대에 장관들의 법을 어긴 유세가 얼마나 큰 역효과를 나타내었는가를 각료들 자신이 곰곰 생각해 볼일이다. 설사 옳은 일이라 하더라도 이 시점에서 개정한다는 것은 정부의 저의가 너무나도 들여다보이는 처사라 아니할 수 없다.
더욱이 개정 내용은 헌법과 관계법률의 정신에 어긋난다고 봄이 타당할 것이다. 정부는 행정각료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는 헌법과 양 선거법의 정신을 위배하면서 이미 65년 10월에 정당법시행령을 개정하여 각료의 정당가입을 허용한바 있다. 정당가입을 할 수 있는 이상 정치활동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 이번 개정의 취지라 한다. 이 논리를 그대로 연역하면, 모든 국민은 참정권을 가지니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하여서는 정당에도 가입하고 선거운동도 할 수 있도록 법령만 개정하면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헌법이라는 이름의 문서에 적었다고 해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확보되는 것이 아니라는 「에드먼드·버크」의 말을 차용하면 시행령을 개정한다고 해서 행정각료의 선거운동이 가능해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국가공무원법 제3조에 규정된 공무원」이 정치활동을 할 수 있다고 막연하게 개정하였으므로 국무위원에서 시장·법관·검사를 거처 노무자까지 포함하는 모든 별정직공무원이 수시로 동원될 수도 있을 것이 아닌가.
법 정신으로 보나 정치 도의로 보나, 그리고 기술적으로 보나 하등의 합리성을 찾아볼 수 없는 이번 국무회의의 결정을 정부 당국자는 신중히 재고할 것을 촉구하고자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