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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우드로 진격하는 한국 영화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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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폭 마누라'의 포스터. 월트 디즈니 계열의 미라맥스 영화사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 액션 코미디를 미국 시장에서 리메이크하기 위해 110만 달러에 판권을 사들였다.
영화 '조폭 마누라'의 포스터. 월트 디즈니 계열의 미라맥스 영화사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 액션 코미디를 미국 시장에서 리메이크하기 위해 110만 달러에 판권을 사들였다.
김수진(19)양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보며 자랐다. 미국의 영웅이 악당들을 물리치는 장면들은 언제나 재미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는 김양은 '물량공세'식 미국영화에 진절머리가 난 대신 방화의 열렬한 팬이 됐다. 한국인들의 관심사를 더 잘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김양은 "방화는 실생활과 잘 부합 된다"며 "하지만 요즘 미국영화들은 싫증난다. 모두 비슷비슷한 데다가 현실성도 떨어지고 오로지 시각효과에만 의존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김양 혼자만의 의견이 아니다.

특히 10대와 20대들을 중심으로한 관객들은 지난해 한국 영화의 시장점유율을 거의 50%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방화에서 신선한 흥미를 찾았기 때문이다.

보다 젊고 도시적 감각을 가진 감독들이 넉넉한 투자와 마케팅을 통해 한국영화의 가능성을 재발견하고 있는 동안, 작품들은 아시아와 그 밖의 지역에서 평론가와 관객들의 인기를 몰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열기가 가장 강한 곳은 아직 국내이고, 미국과의 자유 무역 거래 예정으로 인해 한국영화 의무상영 편수를 규정한 법률이 폐지될 경우 역풍이 몰아칠 수 있는 곳도 국내이다.

국내 흥행 성장

지난해 가장 크게 흥행했던 영화 5편이 모두 방화였고, 이중 4편이 폭력과 '치고받는 코미디'가 가미된 유행에 발맞춘 '조폭 영화'였다.

남자들의 우정을 그리며 흥행 수위를 차지한 '친구'는 30-40대 남성 관객들의 향수를 자극, 서울에서만 260만명을 끌어모았다.

영화평론가 이효인씨는 "헐리우드 영화들은 눈으로 즐기기에는 좋지만 예전처럼 국내 관객들을 자극하지는 못하고있다"고 밝혔다.

그는 "국내 관객들은 피가 난무하는 액션 느와르 보다 코미디를 더 좋아하면서, 동시에 한국식 액션 영화가 더 재미있다고 여기게 된 것 같다"며 "평범한 삶에서 탄생하는 평범한 영웅에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 영화진흥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영화시장 규모는 2천440억원(1억8천600만 달러)로 전년도 보다 27%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방화의 2001년 시장 점유율은 46%로, 전년도의 32% 보다 늘어났다.

국제적인 박수 갈채

방화를 보호하기 위한 스크린 쿼터 제도는 다시금 미국 영화사들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방화를 보호하기 위한 스크린 쿼터 제도는 다시금 미국 영화사들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반면 헐리우드 작품의 시장점유율은 47%로, 반면 최고 인기 외국 영화였던 괴물과 공주 이야기 '슈렉'은 서울에서 110만 관객을 불러들였다.

최근 몇 년 동안 크게 도약한 것은 상업 영화만이 아니다.

몇몇 한국 영화들은 국제 영화제에서 인기작이 됐고, 한국 감독들은 호평을 얻었다.

학대를 주고 받는 사랑 이야기를 그린 김기덕 감독의 폭력적인 영화 '나쁜 남자'는 올해 베를린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었다. 비록 수상은 못했지만 이 작품은 영화제 내내 가장 논쟁거리였던 작품 중 하나였다.

젊은 감독인 박찬욱씨의 '공동경비구역 JSA'는 긴장이 고조돼 있는 비무장지대에서 벌어지는 남한과 북한 병사들 사이의 허락 받지 않은 접촉을 다뤘다. 이 영화 역시 화제를 모았었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열린 드빌 아시아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공동경비구역 JSA'는 곧 아시아 지역에서 개봉했다. 이 작품은 지난해 일본에서 100만 관객을 모았고, 지난 1월 홍콩에서는 개봉 첫주 65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기획과 마케팅 능력의 신장

신세대 영화들의 이 같은 인기와 드넓은 반향에 힘입은 한국 영화의 해외 수출량은 2000년의 700만 달러 규모에서 지난해 1천130만 달러로 늘어났다.

산업 분석가들은 한국 영화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 원인을 제작비의 확대와 기획· 마케팅 능력의 향상 탓으로 분석했다.

연예 제작사인 싸이더스 우노 필름의 마케팅 팀장 이현숙씨는 "늘어난 자금이 시장으로 흘러들면서, 일부 방화들은 상당한 수익을 일궈냈다"고 밝혔다.

'무사'에 70억원 가량이 투입되는 등 국내 제작사들의 예산이 대폭 상승했다고 영화진흥위원회가 밝혔다. 지난 5년간 영화 1편당 평균 제작비용은 두 배 이상인 27억원으로 늘어났다.

'JSA'를 제작한 명 필름의 심재명씨는 "공격적인 마케팅과 복합상영관의 확산이 방화의 부흥을 이끌었다"고 말했다.

스크린 쿼터 제도

효과적인 마케팅과 예산의 확대의 이면에는 방화가 헐리우드 영화를 능가하도록 돕는 장치가 있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한국의 영화관들은 1년에 146일 동안은 의무적으로 방화를 상영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할당 조치는 최근 다시 미국 영화사들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아시아 3위의 경제 규모를 가진 한국 정부가 올해 안으로 미국과 상호 투자 협정 체결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정경제부는 미국의 압력 탓에 올해 안에 쿼터를 축소하길 원한다. 그러나 우리는 경제적인 이점 때문에 문화적인 요소를 무시할 수 없다"고 문화관광부의 한 관리가 밝혔다.

지난 2월 초 영화 제작자들과 배우들은 서울 중심가에서 정부가 쿼터를 수호할 것을 촉구하는 시위를 했다.

정부가 쿼터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히지 않고 있는 탓에 한국의 영화 제작사들은 그 어느 때보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리고 명확한 해답이 언제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SEOUL, South Korea (CNN) / 오종수 기자 (JO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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