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반론 기고

대북정책 평가의 척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중앙일보는 3월 26일부터 사흘에 걸쳐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재조명하는 기획기사를 게재했다. 지난 정부의 공과(功過)를 살피는 것은 다음 정부의 길을 닦는 과정에 필요한 일이다. 어떠한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도 사안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로 인해 상이한 평가들이 공존할 수 있다. 남북 관계의 경우 주제의 특성상 비공개 자료가 많고 사실 관계 자체가 잘못 알려지는 경우가 많아, 지엽적인 사건들보다는 정부가 추구했던 본질적인 목표와 그 결과를 근거로 한 평가가 내려져야 한다고 본다.

 동 기획시리즈가 부각시키고자 한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금강산 관광객 피살,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과 같은 북한의 대남도발이 있었는데도 해이한 대응 태세와 위기관리 체계 때문에 신속하고 단호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북한을 얕보고 너무 강하게 몰아붙이다가 대화의 타이밍도 놓치고 정부 내부에 분열까지 겹쳐 대북정책의 방향성을 잃었다는 것이다.

 북한의 과감하고도 새로운 도발 앞에 우리 군과 정부의 여러 문제점들이 노출된 것이 사실이 다. 다만 북한의 도발을 응징하기는커녕 우리 군의 손발을 묶어 전사자들을 자초하고, 이들의 희생을 박대하여 그 유가족들을 분노하게 했던 과거의 대북 안보 태세를 함께 되짚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이전 정부들이 허물고자 했던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확고히 지키고자 했고, 북한 정권이 마음대로 도발을 일으키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남북 관계를 다시 그들의 뜻대로 끌고 가던 파행의 고리를 끊고자 노력했다.

 너무 유화적으로 해도 너무 강하게 나가도 북한을 변화시키지 못했으니 다 틀렸다는 양비론(兩非論)을 펴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대북 강경 정책을 편 것이 아니다. 핵 포기를 결심하면 모든 가능한 지원을 하겠다고 했고 구체적인 계획과 시간표도 제시했다. 군사비와 통치자금으로 전용(轉用)되던 현금과 쌀 지원을 최소화했을 뿐, 북한 주민에게 필요한 다양한 인도적 지원 방안을 적극 추진했다. 통치 계급에게만 필요한 지원을 달라고 어깃장을 놓은 것은 북한이었다. 남과 북이 상생과 공영으로 함께 가자고 제시한 ‘비핵개방3000’ 구상을 거부한 북한 정권을 질책하기에 앞서, 내세운 공약을 왜 지키지 못했느냐고 따질 일은 아니라고 본다. 7000만 한민족의 재결합을 바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루는 디딤돌을 놓고자, 대한민국의 안보와 평화를 우선시하고 핍박받는 북한 주민들의 삶과 인권을 개선시키도록 북한 사회의 변화를 유도하고자 했던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5년 내내 흔들림 없이 유지되었다.

 과거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이 무분별한 전략물자 지원으로 이어져 우리 국민의 안보를 더 위태롭게 만들었는데도 정상회담 성사 자체를 불문의 덕목으로 여길 수는 없을 것이다. 2009년 남북 정상회담 논의 과정에 북한은 대규모의 쌀, 비료 지원뿐 아니라 이를 훨씬 능가하는 다른 재정 및 현물 지원까지 망라한 대북 지원의 구체적 일정표를 전제조건으로 제시하였다. 국군 포로 한두 명도 남한을 방문시킨 뒤 다시 북으로 데려가겠다는 것이었지 송환 얘기가 아니었다. 이런 정상회담이라면 상식적으로 볼 때 납득할 국민이 많지 않을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임 시 우리 쪽에 강경파, 대화파가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북쪽이 그렇게 분열돼 있는 것 아닌가 하고 반문한 적이 있다.

 앞으로도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은 더디더라도 정도(正道)를 걸어야 하며, 이는 자유와 번영을 함께 가꾸고 나누는 민족 통일의 열망에 의해 담금질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굳게 마음을 모을 때 북한의 변화도 남북 관계의 발전도 앞당겨질 것이다.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