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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철의 여인’은 갔지만 … 21세기 메르켈이 바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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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중국 선전의 왁스뮤지엄에 전시된 마거릿 대처(1925~2013) 전 영국 총리(오른쪽)와 덩샤오핑(1904~97) 전 중국 군사위 주석의 밀랍인형 앞에 9일 대처 전 총리의 서거를 애도하는 꽃들이 놓여 있다. 대처는 친미·반공노선을 유지하면서도 1982년 영국 지도자로서는 처음 중국을 방문해 덩 주석과 만났다. [선전 AP=뉴시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8일 타계하며 1980년대 냉전시기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여성 지도자가 사라졌다. 그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함께 냉전을 끝장낸 주역이었다. 대처 전 총리가 가졌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여성 지도자’ 자리는 21세기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잇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8일 추모사에서 자신과 대처 전 총리의 유대를 강조했다. 그는 “현대 영국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대처 전 영국 총리는 당대의 세계적인 정치 지도자였다”고 회고했다. 이어 “자유가 확고한 정치적 신념이었던 대처 전 총리는 (공산권) 동유럽의 자유운동을 일찍부터 지지했다”며 “냉전 종식에 기여한 그의 업적을 결코 잊을 수 없다”고 했다.

 29살 차이가 나는 메르켈(59) 총리가 대처 전 총리를 생전에 정치지도자로 만나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적은 없다. 하지만 둘은 독일과 영국의 첫 여성 총리로 ‘철의 여인’이라 불리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같은 보수우파 정치인으로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해 국내는 물론 유럽, 나아가 전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철의 여인은 갔지만 21세기의 후계자는 여전히 국제정치무대에서 막강한 파워를 행사하고 있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이 두 여성 지도자를 비교했다.

 1925년생인 대처는 청년기에 독일과의 제2차 세계대전을 직접 경험했다. 반면 1954년생으로 전후 세대인 메르켈은 2차 대전의 결과물로 생겨난 동독에서 성장했다. 정치인으로서 대처는 다우닝가 10번지에 입성할 때까지 험난한 자수성가의 길을 걸었다. 하원의원 도전 9년 만에 처음 당선됐으며 이후 11년 만인 70년에야 장관이 됐다.

 반면 메르켈은 칸츨러암트(총리 관저)에 들어서기까지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독일 통일 후 실시된 첫 총선에 출마해 단번에 배지를 달았다. 11년 넘게 집권했던 대처가 당원들의 압력에 못 이겨 총리직에서 물러난 지 나흘 뒤인 90년 12월이었다. 한 명은 쓸쓸한 퇴장을, 한 명은 화려한 출발을 하는 엇갈린 운명이었다. 헬무트 콜 전 총리의 ‘정치적 수양딸’인 메르켈은 의원이 되자마자 장관에 발탁됐다.

 자연과학도라는 점도 닮은꼴이다. 대처는 옥스퍼드대에서 화학·법학을, 메르켈은 라이프치히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이는 두 여성이 현실적인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사실적인 세계관에 입각해 합리적인 실용주의를 추구하는 바탕이 됐다.

 남성들이 지배했던 독일과 영국의 정계를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으로 휘어잡고 인내와 결단력으로 정치적인 목표를 달성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두 여성은 분명한 차이가 난다. 신자유주의 도입, 급진적 민영화, 노조 해체, 포클랜드 전쟁 등 대처의 공과에 대한 평가에는 애증이 교차한다. 반면 메르켈은 구제금융을 받는 나라에 엄격한 긴축 정책을 요구해 나라 밖에서는 비판을 받지만, 독일 내에서는 화해와 조정의 정치인으로 높은 인기를 누린다. 메르켈은 오는 9월 총선에서 3선에 도전한다. 승리하면 대처보다 6개월 더 집권할 수 있다. 그가 퇴장할 때 어떤 평가를 받을지 주목된다.

한경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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