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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비아 좌파에 휘청이는 올랑드 정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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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상언
런던 특파원

‘강남 좌파’의 원조는 프랑스의 ‘캐비아(철갑상어 알) 좌파’다. 계몽사상가 볼테르나 대문호 빅토르 위고로 계보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소설 『레미제라블』에 등장하는, 혁명을 부르짖다가 결국 부잣집 도련님의 삶으로 돌아가는 마리우스도 같은 계열이다.

 요즘 프랑스가 캐비아 좌파가 연출한 반전극 때문에 들끓고 있다. 지난달까지 10개월간 국세·예산 담당 장관을 지낸 제롬 카위자크가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심장질환 전문의였던 그는 1990년대 초 모발 이식 성형업에 뛰어들어 성공을 거뒀다. 그 뒤 사회당 소속의 국회의원이 돼 주로 예산 관련 위원회에서 일했다. 지난해 5월 17년 만에 사회당 정권을 다시 세운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재정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해 그를 각료로 발탁했다.

 ‘탈세와의 전쟁’을 진두지휘했던 그의 이중적 삶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말. 스위스의 비밀 계좌로 돈을 빼돌려 탈세를 해왔다는 전직 세무공무원의 폭로에서 비롯됐다. 그는 “해외 계좌를 가져본 적이 없다”며 버텼으나 법원 소환 뒤 “외국 계좌에 60만 유로(약 8억8000만원)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공개적으로 자백했다.

 이후 그가 2009년 1500만 유로(약 220억원)를 스위스 은행에 예치하려다 은행에서 거절당했다, 싱가포르 은행에 거액을 송금하면서 그 돈에 대한 세금을 낸 것처럼 가짜 서류를 첨부했다는 등의 추적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 와중에 올랑드 대통령의 동창이자 대선 때 선거 자금 관리 책임자였던 출판 사업가 장자크 오기에라는 인물이 카리브해의 조세피난처에서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를 운영하며 재산을 빼돌리고 탈세에 앞장섰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올랑드 정권은 집권 1년 새 만신창이가 됐다. 대통령은 “나는 모르는 일이었다”고 해명하기에 바쁘고, 최고세율 75%의 부자증세 공약은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선 지지율이 27%로 나타났다. 제5 공화국 탄생 이래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이다. 성난 민심은 총리까지 바꾸라고 아우성이다. ‘긴축’과 ‘성장’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적 무능에 거짓과 위선의 탄로로 좌파의 생명인 도덕성에 입은 상처까지 더해진 결과다.

 요즘 국제사회에서 프랑스의 목소리를 듣기가 어렵다. 전임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때만 해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대등하게 주목받았던 프랑스의 존재감이 글로벌 무대에서 사라졌다. 이 나라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도 애매하다. 그사이 실업률이 치솟고, 국가 경쟁력에 대한 경고장이 날아들고 있다. 정권과 나라가 기우는 것, 한순간이다.

이상언 런던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