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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아침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시절은 봄. 때는 아침. 아침은 일곱시.』
「피파의 노래」라는 로버트·브라우브 의 시가 있다. 그 노래는 다시 계속된다.
『산기슭엔 진주 같은 이슬들이 반짝이고 종달새는 하늘을 날고, 달팽이는 수풀 속에서 움찔거린다』 이 좋은 계절에, 이 신선한 아침에, 사람들은 저마다 도장과 투표통지서를 들고 집을 나선다. 아침 7시, 벌써 투표소엔 사람들이 줄을 지어 늘어 서 있었다. 약속이나 한 듯이 굳은 입에 긴장한 얼굴에 정중한 자세들. 시간이 가도 지루해 하지 않으며 질서가 이지러지지도 않는다. 무명옷이라도 모두들 깨끗하고 단정하다.
칠순이 넘는 노파라고 당황하거나 체념하지 않는다. 그렇게 당당할 수가 없다. 호기심으로 한눈을 파는, 초년 유권자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호기심은커녕 너무나 의젓하다.「민주선거」가 이 나라에 이식된지도 어언 20년. 오늘의 그 의젓한 대열이 있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혼란과 곤경과 피와 한숨이 있었던가. 환멸의 20년.
그럴수록 민중은 굳세어지고, 현명해지며 우리의 시민정신은 눈을 크게 떠왔다. 이제는 누구나 둥글둥글 큰 눈, 「민주주의의 눈」을 가지려 하며 그 긍지를 갖고 싶어한다. 환호할 때 환호할 줄 아는 아량과 정열을 ,항거할 때 항거할 줄 아는 정의와 용기를, 그들은 모두 갖고 있다. 오늘, 대열을 짓고 그들이 기다릴 줄 아는 것은 선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한간 1평방 센티도 못되는 기표란에 담기는 기대와 소망과 신망은 민중의 고심 참담한 사연이며, 절실한 호소이다. 지도자는 기표소에 응축된 민중의 염원을 판독할 줄 알아야한다. 이제 24시간후면 당락의 윤곽이 드러난다. 패배자는 누구의 적도 아니다. 민중과 ,지도자와, 그뿐이다. 우리의 적은 빈곤과 병고와 전쟁과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들이다. 「브라우닝」의 시는 이렇게 끝이 난다. 『하느님은 하늘에, 세상은 태평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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