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화장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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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며칠전의 일이다. 부엌에서 설겆이를 하고 있는데 밖에서『화장품 사세요』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마침 「로션」이 떨어졌기에 장수를 불렀다. 장수는 주섬주섬 꺼내놓으며 설명을 늘어놓는다. 한참 지껄이더니 나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면서 「코티」분을 내놓았다. 언성을 낮추며 불란서제라는 것이다.
받아보니 멀쩡한 국산품이다. 영어를 모르는 사람들은 속기 좋게 만들어놓았다. 그뿐 아니다. 몇몇 화장품이 국한문 하나 없는 영어 투성이다. 언젠가 어느 약병에서도 본 기억이 났다.
○…그때 마침 아빠가 들어오셨다. 이 광경을 보신 아빠는 『국문은 누구나 다 아는 것이지만 영어로만 쓰니까 많은 사람이 영어를 더 알게될게 아니냐』고 하시며 뜻 있는 웃음을 띄우셨다. 나는 어쩐지 이런 표지를 허가해주는 당국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그리고 업자들의 지각없는 속셈이 미웠다. 그리고 서글펐다.
○… 그것은 우리말을 아끼고 바르게 써야한다는 생각뿐이 아니다. 상표는 소비자를 위해 친절하고 편리하게 표시되어야 한다는 얘기만이 아니다.
언제쯤 우리는 서로 믿고 살수 있는 세상이 올 것인가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다. 나는 부드러운 얼굴로 화장품이 필요 없다고 말했다. <김현자·전북 완주군 조촌면 동산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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