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중 중재하려 말고 대화 도와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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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호 02면

“한국에 닥친 가장 큰 문제는 미·중 관계다. 한국은 양국의 중재자 역할을 원하겠지만 그건 어려운 일이다.”

채터슨 주한 캐나다 대사, 동아시아硏 주최 회의서 강조

선진 중견국 대사를 초청해 한국의 바람직한 외교지표를 들어보는 ‘주한 외국대사 초청 라운드 테이블’이 동아시아연구원(EAI) 주최로 지난 3일 개막됐다. 첫 초대손님으로 나온 데이비드 채터슨(사진) 주한 캐나다 대사는 자신의 외교 경험을 통해 볼 때 미·중 관계가 중견국으로 도약한 한국에 최대 도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섣부른 중재 대신 미·중이 대화채널을 늘려 투명성을 확장하는 걸 도우면 한국의 입지도 확대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채터슨 대사는 “캐나다는 미국이란 초강대국과 200년 넘게 이웃하면서도 미국과 경쟁해 강대국이 되려 하지 않고, 유연한 외교로 중견국에 오른 경험이 있다”고 소개했다. 캐나다는 미국과 민주주의·시장경제 가치를 공유하면서도 외교적 독립성을 추구했다. 미국의 동맹이면서도 베트남 전쟁에 불참했고 쿠바와 수교했다. 국제기구와 규범 마련에도 적극적이었다. 유엔과 세계무역기구(WTO) 설립엔 캐나다의 역할이 컸다. 미국과 이웃으로 지내면서 국제규범이 없으면 강대국이 상황을 좌지우지하는 현실을 깨달은 덕분이었다고 채터슨 대사는 지적했다.

채터슨 대사는 “중견국은 미국처럼 단독으로 어젠다를 설정할 수 없다”며 “따라서 그때그때 이익이 합치되는 나라와 연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러려면 자국의 이익이 뭔지 분명히 이해하는 게 필요하고, 일관성 있는 행동으로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하면서 이란 인권문제는 침묵하는 건 한국의 평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채터슨 대사는 지적했다.

채터슨 대사는 “한국처럼 새로 중견국(middle power)에 올라선 나라는 자신도 힘(power)을 갖게 됐다고 착각하기 쉬운데, 실은 중견국은 그런 권력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국제기구 참여나 원조 프로그램을 통해 다른 나라의 관심을 사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게 국제사회의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회의에는 이숙종 EAI 원장과 황진하 국회의원, 이백순 외교부 북미국장, 전재성 서울대 교수, 서정건 경희대 교수가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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