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병’은 전 세계적 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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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들의 안하무인·좌충우돌은 비단 우리 사회만의 얘기가 아니다. ‘중2병’이란 단어는 일본의 한 라디오 방송이 ‘중학교 2학년 시기에 주로 하는 행동’을 주제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만들어졌다는 게 정설이다. 당시 청취자들은 “자신이 남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서양 음악을 듣기 시작하며, 맛도 없는 커피를 마시려 하고, 사회와 역사에 대한 의식을 갖춘 것처럼 ‘미국은 추잡해’라고 말하는 것”이라며 중2병 증상들을 소개했다.

 중2병이란 단어가 유행하자 일본에서는 지난해 7월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라는 제목의 TV 애니메이션이 선보여 인기를 끌었다. 중2병에 빠져 허세 가득한 시기를 보낸 고교생 주인공이 과거 자신의 중학교 시절을 지우고 싶어 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다뤘다.

 미국에서도 ‘2학년 병(sophomoric illness)’이란 말이 있다. 주로 고교나 대학 2학년 때 겪는 증세를 일컫지만 단어에 ‘아는 체하는’이란 의미가 담겨 있어 일부 네티즌 사이에선 ‘중2병의 시초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최근엔 유독 감성적이고 말수가 적으며 우울증에 걸린 듯한 사춘기 10대들을 가리켜 ‘이모키드(Emotional Kid의 준말)’라는 단어도 등장했다. 이모키드들은 자신이 얼마나 우울하고 힘든지 블로그에 알리고 자해를 자랑으로 여긴다. 이들의 우울증이 심각해지자 CNN 등 미국 주요 매체는 이모키드 현상을 사회문제로 다루기도 했다. 독일에서는 자신을 드러내는 열망이 강한 청소년기를 가리켜 ‘질풍노도(Sturm und Drang)의 시기’라고 표현한다.

 국내에서는 2010년 인기 웹툰 ‘싸우자 귀신아’에 중2병이 등장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이 웹툰에는 “중2병이란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불행하고 고독하며 세상을 등진 존재라 여기는 증상을 몇 학년 더 먹은 사람들이 비꼬아 만든 신조어”라는 정의가 등장한다. 인터넷에서는 ‘칼을 갖고 다니는 걸 자랑스럽게 여긴다. 뭐든 부정적으로 보는 성향이 크다. 나는 남들보다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주먹으로 벽을 치거나 가래침 뱉는 걸 자랑스럽게 여긴다’ 등 중2병 진단 테스트도 유행하고 있다.

중2병이 중학생들 뿐 아니라 전 세대에 걸쳐 나타나는 증상이란 진단도 있다. 사회가 피폐해지고 스트레스가 늘면서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성인들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최근 40~50대는 물론 어린아이들까지 우울증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과도한 경쟁 속에서 탈출구 없는 사회가 돼 버렸기 때문”이라며 “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시스템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채윤경·이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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