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국 월드컵 조직 위원장의 원대한 목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 인터뷰는 정몽준 한국 월드컵 조직위원회 공동 위원장과의 대담으로 '월드사커' 2002년 1월호에 게재됐다.

월드사커: 이번 월드컵을 통해 한국이 얻을 수 있는 성과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정몽준: 아시다시피 우리는 10개의 축구장을 신설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월드컵 역사상 개최국이 이렇게 많은 축구장을 신설 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단지 축구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한 투자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이나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은 국민의 화합을 이끌어 냈습니다. 스페인은 여러 민족이 다른 언어를 쓰며 프랑코 독재정권의 오랜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스페인 월드컵이 국민들을 단결시키는 데에 성공한 것입니다. 98년 월드컵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프랑스 신문 르 몽드는 당시 월드컵을 치르면서 프랑스 국민들이 개인 보다 국가를 먼저 생각하게 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월드컵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소중한 성과입니다. 우리는 이번 월드컵을 통해 한국 국민이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면, 이번 월드컵이 공동 개최국 일본과의 관계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우리는 이번 월드컵이 한국인의 화합뿐만이 아니라 남한과 북한, 나아가 한국과 일본간의 화합을 이끌어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일 관계의 관점에서 보면, 양국은 서로를 이어줄 이른바 '월드컵 다리'를 통해 서로 화합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맞이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기회일 뿐이지, 보증수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이 기회를 살릴 수 있을지의 여부는 순전히 우리의 노력에 달려있습니다. 실로 부서지기 쉬운 기회이기 때문에 나는 지금까지 제기된 몇 가지 문제들로 인해 이것을 최대한 활용하지 못할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로 월드컵 대회 자체의 의의가 가려지진 않습니다. 그 어떤 것도 이번 월드컵을 퇴색시킬 수는 없습니다.

최근 일본에서 '일본에 말한다'라는 책을 출간 하셨습니다. 그 의도는 무엇입니까?

유쾌한 기억은 아니지만 한국은 한때 일본의 식민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일본은 무력으로 한국을 지배했고 통치 방식은 매우 강압적이었습니다. 한국의 장년층들은 그 시기에 대해 매우 강렬한 기억을 가지고 있고, 그들의 가슴속에 일본을 향한 쓰라린 감정을 간직하고 있으리라는 점은 쉽게 상상하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 같은 젊은 세대들은 그런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사실상 일본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해외 유학을 떠나지만 주로 미국이나 유럽으로 향하고, 일본행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바라든 바라지 않던 간에, 일본은 우리의 가장 가까운 이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나는 미국의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일본을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비록 일본에 대한 나의 지식이 일천하긴 하지만 난 일본을 공부하는 학생이고 또 그렇게 남고 싶습니다.

일본의 한 유력 일간지가 3년간에 걸친 장기 인터뷰를 토대로 책을 한 권 출간할 것을 제안했고 이에 저는 그러자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이 책이 완성된 것에 대해 무척 만족합니다. 이 책의 절반은 양국 간의 정치적, 경제적 관계를 다루고 있고, 나머지 절반은 월드컵 유치 과정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책을 영문 판으로도 발행해야겠군요!

일본과 한국 양국이 공동 개최를 놓고 경쟁심을 느끼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이것 때문에 협력에 위험해지진 않을까요? 이것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경쟁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 또 다른 이에게는 상호 협력으로 보일 수 있는 것입니다. 솔직히 일부 한국인들 중에는 일본이 경제대국이므로 그들과 함께 대회를 치른다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끼는 이들도 있습니다. 일본 특유의 질서의식과 청결, 친절 등은 이미 잘 알려져 있고, 한국은 아무래도 그 비교 대상이 될 테니 안좋게 보여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아주 좋은 기회이며 월드컵이 열리는 해에 수많은 관광객들이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들이 한국에서 좋은 시간을 갖기를 희망합니다.

화합을 말씀하셨습니다만, 북한과의 월드컵 분산 개최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졌습니까?

FIFA가 북한에 제안을 해놓은 상태이지만 이미 그 답변 시한(12월 1일)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난 여전히 블래터 FIFA회장과 북한을 방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축구 및 FIFA에 관여하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재벌가에서 났기 때문에 보다 쉽고 안정된 진로를 택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더 어려운 도전을 선택하게 된 것입니까?

매우 재미있는 견해이군요. 안정된 길이라...

...제 말은 가문에 집중된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의미합니다.

매우 어려운 질문이면서도 동시에 아주 기분 좋은 질문이군요. 내가 축구계를 위해 일하고 있는 것은 행운입니다. 나는 축구경기를 보는 것을 좋아하고 직접 뛰는 것도 좋아합니다. 제 형님 중에 한 분은 대한 야구 협회장이고, 저는 올림픽에서 한국 야구 대표팀이 동메달을 획득하는 순간을 직접 봤습니다. 나는 스포츠 팬이고 또 직접 스포츠 경기에 참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나는 5차례나 골절상을 입어 고생했었고, 한번은 스키 활강 도중 어깨뼈가 완전히 으스러진 적도 있습니다. 스키 활강은 아주 빠르고 무섭습니다. 사람들 말이 약간은 제정신이 아니어야 탈 수 있을 거라더군요.

현재 FIFA 부회장으로써, 파산한 FIFA 마케팅 대행사 ISL 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FIFA가 이 문제를 잘 처리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ISL의 파산은 상당히 뜻밖이었습니다. 문제는 파산 그 자체가 아니라 파산 이후 언론의 보도 내용이었습니다. 나는 그 폭로전의 진상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느낍니다. 또한 FIFA가 결백을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언론의 폭로내용이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최소한 그것의 사실여부를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진상규명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이 조사는 어떤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할까요?

현재 FIFA내에서 그 문제를 두고 논의 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가 매우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지금부터 5월 말까지의 준비과정에서 남은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입니까?

매우 붐빌 것으로 예상되는 양국 간의 교통 문제와 한국 내 숙박시설 문제입니다. 우리는 안락하고 여유로운 숙박시설을 제공해야 합니다. 그리고 안전 문제가 있습니다. 나는 현재 전 세계적인 긴장 상황이 내년 초에는 완화되어 월드컵을 통해 전 세계에 화합과 평화라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통문제 말인데요, 해결책이 있습니까?

음, 현재 양국 간에 더 많은 항공 노선이 필요합니다. 항공기가 충분히 있으므로 이건 그다지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장차 FIFA 회장으로 아시아인이 선출될 가능성이 있습니까?

좋은 지적입니다. 축구가 맨 처음 창안된 곳이 중국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난 FIFA내 여러 대표단을 만날 때 마다 이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또 2004년 FIFA 창립 100주년을 축하하게 될 장소가 바로 중국입니다. 축구가 아시아에서 시작됐으니 가까운 미래에 아시아 FIFA의장이 선출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봅니다.

그럼 귀하가 될 수도 있겠군요?

제가 될 수도 있지요. 일본의 오카노도 될 수 있습니다. 중동 지역 인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가능성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럼 출마를 고려하고 계십니까?

네, 준비를 해야겠지요. 꼭 저를 위해서가 아니라도 아시아인들은 이를 준비해야 합니다.

한국에서 미래의 대통령 감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혹시 대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계신 건 아닙니까?

그것은 지나친 평가입니다. 기회가 온다면 피하지 않겠지만 특별히 애쓸 생각은 없습니다. 우리말에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관직과 죽음은 같다.' 기회를 무시한다면 어리석은 짓이겠지만, 그 자리를 얻기 위해 애쓰는 것은 더 한심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월드컵 대회 유치부터 계획 및 조직 등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되돌아보실 때, 어떤 점이 가장 큰 성과라고 보십니까?

굉장히 험난한 길이었습니다. 일본은 우리보다 5년이나 먼저 월드컵 유치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한국 축구 협회장이 됐을 무렵 아시아 축구 최강국인 우리나라도 월드컵 유치 경쟁에 뛰어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회 유치에는 실패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참가는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한국의 월드컵 대회 유치를 지지해 달라고 설득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국이 대회 유치에 실패할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아벨란제 (당시 FIFA 회장)는 일본과 긴밀한 관계였고, 몇몇 FIFA 후원사들이 일본계 회사였을 뿐만 아니라 당시 ISL의 지분 절반 이상이 일본 회사 소유였으니까요.

두번째로 닥친 어려움은 공동 개최 결정이후 닥친 외환위기였습니다. 나는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서울에 새 경기장을 신축할 것을 강력히 설득했습니다.

마지막 남은 과제는 한국 대표팀이 내년 월드컵에서 얼마만큼의 성적을 거두느냐 입니다. 이점에 대해선 그저 잘되기를 기도하는 수 밖엔 없겠지요.

한국이 본선 16강에 진출하지 못한다면 상당히 큰 충격이 되지 을까요?

지금으로선, 그럴꺼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가 월드컵에서 우승할까요?

FIFA 경기장 실사위원회 기자회견중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마타레스 부회장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결승전은 이탈리아와 한국이 치르게 될 것이라고요.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World Soccer / 오병주 (JOINS)

◇ 원문보기 / 이 페이지와 관련한 문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