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 광배는 기의 표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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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을 실물로 보느냐 도판으로 보느냐 하는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크다. 생명체를 산 것으로 보느냐 박제로 떠서 보느냐에 비유할 수 있다.

강우방(62) 이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최근 북한에서 내려온 고구려 시대의 유물과 무덤벽화를 보고 이 얘기를 새삼 되새겼다.

지난해 12월 6일부터 서울 삼성동 코엑스 3층 특별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기획전 고구려!-평양에서 온 무덤벽화와 유물'(3월 5일까지.02-3443-2511)에서 '연가 7년명 금동일광삼존상'과 복원한 무덤벽화를 실제 관찰하면서 머릿속에서 익혀 가던 논문 한 편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불상에서 불신 뒤편에 선 광배(光背)에 나타나는 문양을 학계에서는 그동안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불꽃 무늬(화염문)라 했어요. 고구려 무덤벽화에서 수없이 변주되는 다양한 문양들도 막연히 구름 무늬나 당초문 등으로 해석했지요.

하지만 도록이나 사진집에서 눈에 익은 문양들이 뭔가 다른 생명력을 지닌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모아가다가 이번에 실물을 보고 그 문양들은 '기(氣)표현'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姜교수는 해묵은 수수께끼를 풀고 난 아이처럼 신이 나서 단숨에 논문을 써내려갔다. 2월 초에 발간될 반(半)연간지 '미술사논단'에 발표할 '고구려 고분벽화와 불상 광배의 기표현'을 그는 "예술품을 볼 때 생명력을 느낀다.

위대한 작품일수록 강하게 생명력을 느끼며…"라는 말로 시작해 고구려 미술품에 경의를 표했다. '고구려!'전이 국내 학계에 자극을 주어 새 학설을 낳은 셈이다.

이 논문에서 姜교수는 "부처 몸에서 나온 기(氣), 다시 말해 부처의 정신을 압축한 것이 광배에 나타나는 구불구불한 문양으로 바로 기(氣)무늬의 꼬리"라고 정리했다.

그는 또 이 기가 고구려 무덤벽화에서는 세 가지 조형 방법으로 표현됐다고 지적했다. 첫째는 대지로부터 아물아물 수증기가 올라 구름이 되어 떠있는 듯한 운기문(雲氣文), 둘째는 호흡을 통해 생명과 만물이 생긴다는 우주생성론을 형상화한 당초문(唐草文), 셋째는 자연계의 운행 원동력이라 할 바람을 추상화한 바람무늬다.

姜교수는 여러 유형으로 나타나는 이 '기표현'을 몇 가지 형식으로 기호화해 콤마형.S자형.C자형.돌기형 등 여덟 가지로 분류했다. 나아가 이 '기표현'이 태극(太極) 무늬로까지 연결됐다고 봤다.

이런 과정을 거쳐 기의 표현이 가장 화려하게 전개되는 것이 광배로 "중국 광배에 많이 나타나는 C자형이 S자형으로 대치되고, S자형이 여러 형태로 조합되면서 무늬가 연속돼 빛을 발하게 된다"고 결론지었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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