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84조원 살포 … 더 세진 엔저 공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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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행(BOJ)의 통화정책위원회(MPC) 문은 4일 오래 닫혀 있었다. 여느 때보다 2시간 늦게 열렸다. 그만큼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총재의 취임 후 첫 회의가 난산이었다. 회의 도중 글로벌 외환시장에선 이상 징후까지 나타났다. 엔화 가치가 강세를 보였다. 구로다 총재가 BOJ 장악에 실패해 공격적인 양적완화(QE) 정책의 뜻을 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예측 탓이었다. 이는 곧 구로다를 BOJ 총재에 임명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패배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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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일본 ‘돈의 신전(Money Temple·중앙은행 닉네임)’ 문이 열린 순간 글로벌 금융시장은 요동했다. 강세를 보이던 엔화 가치가 약세로 확 돌아섰다. 한국 원화와 견준 엔화 가치(100엔 기준)는 1211원에서 1175원으로 급락했다. 지난달 28일 이후 최저 수준이다. 일본 주가는 2% 떨어지다 2% 상승으로 돌아섰다. 통 큰 QE가 결정됐기 때문이다.

 BOJ는 내년 1월로 예정된 무제한 QE를 앞당겨 당장 실시하기로 했다. 규모도 엄청나다. 매달 7조 엔(약 84조원)씩 새 돈을 찍어 일본 국채와 회사채 등을 사들이기로 했다. 블룸버그통신이 취합한 도쿄시장 전문가들의 예상치(5조2000억 엔)보다 1조8000억 엔(35%)이나 많은 규모다. 기존 매입 규모(3조4000억 엔)와 비교하면 배 이상이다.

 로이터통신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QE”라고 평했다. 매입 규모만 늘어나서가 아니다. BOJ 자산매입 대상도 확대됐다. 지금까지 만기 3년 이내 국채를 사들이던 것을 앞으론 10년짜리까지 사들인다. 부동산펀드(리츠)와 상징지수펀드(ETF) 같은 위험자산을 사들이는 규모도 크게 늘어난다. QE의 총액 한도(기존 101조 엔)도 아예 없앴다. BOJ는 연간 물가(CPI) 상승률이 2%에 이를 때까지 인쇄기를 계속 돌려 엔화를 찍어낸다.

 구로다는 성명서에서 “물가 2% 목표를 2년 내 ‘가능한 한 빨리’ 이루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한결 강화된 디플레이션(장기 물가하락) 해결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이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국보다 훨씬 다양한 자산을 사들이는 QE”라고 전했다.

 구로다 총재는 역사적인 변화도 단행했다. 통화정책의 지렛대를 바꿔버린 것이다. 지금까지 BOJ는 기준금리인 하루짜리 무담보 콜금리(현 0.1%)를 조정해 물가와 성장률 변화를 유도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통화량을 직접 움직이는 방식을 쓰기로 했다. 미국·한국 등이 쓰는 기준금리 타기팅을 일본이 버린 것이다. 역사적인 회귀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1990년 이후 통화량을 포기하고 기준금리를 지렛대로 채택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신자유주의 통화정책’의 승리”라고 불렀다. BOJ가 주요국 중앙은행 중 처음으로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에서 이탈한 셈이다.

 로이터통신은 “BOJ가 QE를 처음 도입해 통화정책의 새 장을 열어 미국·영국 등에 영향을 줬다”며 “이번 기준금리 포기도 비슷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구로다 총재는 이날 내놓은 정책 패키지를 ‘질적·양적 통화완화’라고 이름 붙였다.

 이는 구로다 총재와 아베 총리의 승리 선언이기도 하다. 쉬운 싸움이 아니었다. 블룸버그통신은 “통화정책위원 9명 중 구로다가 확보한 표는 4표에 그쳤다”고 전했다. 나머지는 반대 또는 소극적이었다. 이런 열세에도 구로다 총재는 ‘BOJ 간토군(關東軍)’들이 중시하는 제한적인 QE와 기준금리 기반 통화정책을 모두 폐기했다.

 한국과 중국 등 주요 교역 국가들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엔저 공세에 시달리게 됐다. 그만큼 일본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은 커진다. 구로다의 과감한 QE는 11일 기준금리를 결정해야 하는 한국은행(BOK)에도 적잖은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강남규 기자

◆BOJ 간토군=‘양적완화(QE)의 아버지’인 리하르트 베르너(경제학) 영국 사우샘프턴대 교수가 BOJ 핵심 세력에 붙인 닉네임이다. 전임 시라카와 마사아키(白川方明) 총재까지 23년 정도 BOJ와 일본 경제정책을 이끌어온 세력이다. 간토군은 일제시대 만주에 주둔한 일본군이다. 본토의 통제에서 벗어나 매우 독자적으로 움직였다. BOJ 핵심 세력도 옛 대장성(재무부)과 경쟁하며 독립적으로 통화정책을 펴 베르너 교수는 이들을 간토군으로 불렀다. 이들은 성장보다는 물가안정과 규제완화, 외환시장 자유화 등을 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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