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박스 못 접어” 시선 겨냥 … 북, 대남 위협 충격요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북한이 우리 측 근로자의 개성공단 출경을 차단한 3일 경기도 파주시 도라산남북출입사무소에서 출경하려던 차량들이 방향을 돌려 나오고 있다. [김형수 기자]

북한이 이번엔 개성공단에 위협의 손길을 뻗쳤다. 개성공단 내 개성공업지구관리위에 근무하는 북측 관계자는 3일 오전 “남측 인원과 물자의 출입을 제한할 것”이라고 일방적으로 우리 측에 통보했다. 오전 8시30분부터 시작될 예정이던 출경(남측→개성공단) 수속이 전면 중단됐다. 대신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건 허용해 33명의 관계자들이 귀환했다.

 출입제한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은 3일 정상 가동됐다. 공단 진출 우리 기업들이 귀환하려던 공장 관리직원 등을 그대로 머물게 하면서 비상근무체제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북한은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직접 나서 ‘핵 불바다’ 등의 초강경 발언을 쏟아내면서도 개성공단은 예외로 했다. 지난달 말 공단 출입경 업무를 협의하던 채널인 서해 군사통신선(경기도 파주~북측 개성)을 끊은 뒤에도 관리위를 통해 명단을 주고받으며 출입경을 진행했다.

 하지만 ‘달러 벌이를 위해 공단은 접지 못하고 있다’는 여론이 번지자 일단 출입제한이란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북측 공단관리 기구인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은 지난달 30일 “괴뢰 역적들이 개성공업지구가 간신히 유지되는 것에 대해 나발질(헛소리)을 하며 우리의 존엄을 조금이라도 훼손하려 든다면 가차 없이 차단·폐쇄해버리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북측은 3일 출입제한 조치를 통보하면서 이런 주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통일부 당국자는 전했다. 국정원 3차장(대북 담당)을 지낸 통일연구원 한기범 박사는 “개성공단이 지도자 돈벌이라는 지적에 대해, 북측 해당 부서로선 그게 아니라는 것을 시위하면서 충성심을 과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북한도 개성공단 문제를 놓고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고민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공단 폐쇄를 주장하는 군부의 강경 목소리와 근로자와 부양 가족 생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노동당과 대남경협파의 입장이 불협화음을 내는 정황도 드러난다.

공단 내 123개 남측 기업에서 5만여 명의 북한 근로자들이 벌어들이는 달러는 연간 8000만 달러(한화 890억원) 수준이다. 근로자 1명당 월평균 134달러를 주는 것으로 계산한 것이지만 이 돈은 북한 당국이 우리 기업으로부터 직접 받아 간다. 근로자에게는 기초적인 배급과 북한 돈 월급만 주면 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돈을 당국이 챙길 수 있다. 2004년 12월 공단 가동 직후부터 직접 근로자에게 임금을 지불하는 직불제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북한의 반발로 주춤한 상태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 중단으로 돈줄이 말라버린 북한으로서는 산소호흡기와 같은 달러박스다.

 정부는 북한이 공단 폐쇄라는 극단적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2009년 3월에도 한·미 합동 군사연습을 빌미로 공단 통행을 차단했지만 가동을 중단하지는 않았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개성공단은 이미 덩치가 커져 있어서 문을 닫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오는 15일 김일성(1994년 사망) 생일인 이른바 ‘태양절’을 계기로 북한이 분위기를 누그러뜨릴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 업무보고(3월 27일) 때 개성공단 국제화를 핵심 과제로 제시한 통일부는 1주일 만에 암초를 만났다. 국방부가 공단 폐쇄 시 군사력을 동원한 비상계획을 세워놓고 있다고 밝혔지만 정부 내에서까지 현실성이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800여 명 규모의 국민이 인질로 잡힌 상태에서 북측 지역에서 군사작전을 벌여 인질을 빼내 온다는 건 위험한 발상이란 얘기다.

 일부에선 정부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발이 묶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대선 국면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으로 제기된 신뢰 프로세스가 최근 북한의 도발적 위협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탄력적인 대응을 주문했다.

글=이영종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