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뇌 관련 연구비, 미국 164분의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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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인간의 뇌는 1000억 개의 신경세포(뉴런)로 구성된다. 각각의 뉴런은 시냅스로 연결되는데, 그 숫자는 1000조 개 이상으로 추정된다. ‘작은 우주’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방대한 규모다.

 이런 뇌의 신비를 풀기 위한 연구는 20세기 후반부터 본격화됐다. 자기공명영상촬영(MRI) 등 첨단 영상장비가 개발된 뒤부터다. 2005년 등장한 광(光)유전학은 빛에 반응하는 유전자를 이용해 특정 뇌 활동에 관여하는 뉴런을 구별할 수 있게 해줬다.

2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밝힌 프로젝트는 이 같은 뇌 연구의 결정판이다. 무수히 많은 뉴런·시냅스의 구조와 작동 방식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지도’를 만든다는 계획이기 때문이다. 서유헌 한국뇌연구원장은 “뇌 지도가 만들어지면 각종 뇌 질환의 원인을 밝히고 치료법 개발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처럼 사고하는 뉴로 컴퓨터, 뉴로 로봇도 나올 수 있다. 이창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신경과학연구단장은 “미국이 인간 지놈(genome) 프로젝트로 유전자 분야에서 큰 성과를 거뒀는데 이번엔 뇌신경 분야를 선점하겠다고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럽도 뇌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는 지난 1월 미래기술 주력사업의 하나로 ‘인간 뇌 프로젝트(HBP)’를 선정했다. 수퍼컴퓨터를 이용해 인간의 뇌를 재구성(시뮬레이션)하는 프로젝트다. EC는 이 사업에 10년간 11억9000만 유로(약 1조7000억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한국도 비슷한 연구를 하고 있다. KIST WCI 기능커넥토믹스연구단은 생쥐의 뇌 지도를 제작 중이다. 생쥐의 뇌는 인간의 것에 비해 뉴런 수가 훨씬 적지만, 연구에는 같은 기술이 쓰인다.

하지만 예산은 큰 차이가 난다. 미국은 프로젝트 첫해인 내년에만 1억 달러(약 1100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반면에 KIST의 뇌 지도 연구비는 한 해 70억원이다. 그나마 2009년 말부터 시작된 5년짜리 프로젝트라 내년 말이면 정부 지원이 끊긴다.

 전체 뇌 연구비 규모로 보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2009년 한국 정부의 뇌 관련 연구 투자액은 610억원으로 미국의 164분의 1, 일본의 17분의 1에 머물렀다(2012년도 뇌연구촉진시행계획). 또 미국은 국립보건원(NIH) 산하 뇌 연구기관만 10곳 정도다. 반면에 한국은 1998년 제정된 뇌연구촉진법에 명시된 국가 연구기관인 한국뇌연구원을 올해 2월부터 짓기 시작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이우성 박사는 “상용화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기초연구 분야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충분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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