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베를린』을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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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검문소의 동독 경찰이 한국인에게는 통과를 허용치 않으면 서러워 말고 돌아서 주세요.』 안내원의 사전 경고다. 『왜 하필이면 한국인만 차별 대우라더냐?』 『월남이나 대만도 마찬가지예요.』 요컨대 독일처럼 두 동강이가 난 나라의 반공산 측에서 온 사람의 동「베를린」 구경은 동독 경찰의 자유재량에 달렸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자유중국에서 온 사람은 아예 기권하고 만다고.
그러나 예상했던 것보다 경계선 통과는 훨씬 수월했다. 줄줄이 늘어선 자동차의 홍수가 시계에서 사라지자 바로 거기 공산 동「베를린」이 나타났다.
사람의 수도 부쩍 줄어든다.
길바닥을 파헤쳐 놓은 도로 공사와 전쟁으로 박살난 건물의 정리공사가 유달리 눈을 끈다. 시민들의 옷차림이 서『베를린」에 비해 상대적으로 허술하고 최고급 「호텔」 「레스토랑」이 늘어선 「칼·마르크스」 거리도 여전히 활기를 못 띠고 있다.
식료품상을 기웃거렸다. 한 덩어리에 52 페니히 짜리 호밀 빵과 감자, 양배추, 그리고 이발료, 수도료 등이 서독보다 싸고 그 밖의 것은 거의 모두 서독보다 비싸다. 두 개의 「베를린」을 놓고 숫자놀이를 계속 했다. 동독의 노동자는 양말 한 켤레 값을 벌려면 3시간 10분 동안 노동을 해야 하는데 서독 노동자는 44분이면 된다.
「텔리비젼」 1대를 사는데 쏟는 노동량은 동독이 8백38시간, 서독이 2백36시간, 자동차 한 대를 사려면 동독이 6천3백68시간인데 비해 서독은 1천3백6시간. 동독으로 말하면 공산권에서는 「소련」 다음으로 생활 수준이 높다. 자동차 소유 비율이 「헝가리」가 2백54명, 「폴란드」가 1백35명에 각각 1대 꼴인데 비해 동독은 66명에 1대라는 사실 하나로도 공산권에서 동독이 차지하는 경제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61년 「울부리히트」가 「베를린」 경계선에 장벽을 쌓기까지 3백만 명의 동독 사람이 서독으로 넘어왔다는 사실은 「공산권 제2위」라는 기록이 동독 정권의 안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말해준다. 장벽이 생긴 후에도 2만5천명이 탈출해왔다.
동독을 다스리는 고관들은 수도 동「베를린」에 살지 않는다. 동「베를린」에는 5층 짜리 회색의 노동자 「아파트」가 압도적이다. 고관들은 「베를린」에서 북으로 15 킬로미터쯤 떨어진 「반틀리조」에 살면서 방탄장치가 완비된 「소련」제 「차이가·리무진」을 굴리고 다닌다. 「드레스트너·클럽」같은 「브르조아」 취미의 고급 사교장도 그들만의 것이다.
소련의 무명용사 기념탑이 있는 공원에서 소련군인 두 사람을 만나 같이 기념사진이나 찍자고 달려들었더니 얼마 전에 죽은 「말리노프스키」처럼 살이 찐 두 「이바노프」는 기겁을 하고 손을 저어댔다.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서방측의 현대 문학작품은 「윌리엄·포크너」(미)와 「하인리히·빌」(독)이 고작인 것 같다. 동구를 휩쓴 「카프카·붐」도 이 고장에선 피안의 불길 같았다.
4시간 동안의 「적지만보」를 마치고 다시 경계선을 넘어 나올 때 마음 한 구석에 소용돌이치는 동「베를린」 잔상은 『 몹씨 웃고 싶어하는 시민』들의 표정이었다. <「베를린」= 김영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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