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강남 사모님? 가끔 도우미 아줌마로 오해 받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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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현직에 있던 40년 동안 늘 일이 우선이었다. 가족은 뒷전이었다. 아내는 그런 남편에게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 평생 남편에게 존대했고 1남3녀를 혼자 돌봤다. 아내와 아이들보다 일이 우선인 남편이 서운했을 법도 한데 아내는 오히려 “남편이 고맙다”고 말한다. 강덕기(77) 전 서울시장 직무대행과 아내 정양숙(74)씨 부부의 얘기다.

진주 출신의 강 전 시장과 정씨는 양가 부모 소개로 만나 53년을 함께했다. 강남 개발을 막 시작하던 1970년대 청담동 단독주택에 자리 잡았다. 이후 압구정 현대아파트와 신사동 미성아파트를 거쳐 지금은 도곡동 타워팰리스에 산다. 강남살이 이력만 들으면 정씨는 딱 ‘강남 사모님’이다. 그러나 막상 만나보면 이런 선입견이 무너진다. 정씨는 “10만원 넘는 옷을 사 본 적 없다”며 “너무 수수하게 입어서인지 집 앞 은행 직원이랑 아파트 경비원이 나를 집안일 도와주러 온 도우미 아줌마로 착각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교육열 높은 강남에 살았지만 큰딸(51)을 비롯해 4남매를 학원 한 번 보내지 못했다고 한다. 정씨는 “학원 못 보내 명문대를 못 갔나 싶어 아직도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들 잘 컸다. 온 가족이 화목한 건 부부의 또 다른 자랑이다. 둘째와 막내 딸이 미국에 살아 온 가족이 다 모이기는 어렵지만 큰딸과 아들은 미성아파트에 모여 산다. 노무현 정부 시절 이들 부부도 자식 사는 곳으로 이사하려고 했으나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부과로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며 타워팰리스 집이 팔리지 않아 포기했다고 한다.

-치맛바람 센 강남에서 아이를 키웠다. 자녀 교육은 어떻게 했나.

 정양숙=“강남이라 그런지 주변에선 다 학원 보내고 과외 시키더라. 그런데 우리는 아이들 어릴 때 형편이 어려워 학원 한 번 못 보냈다. 공무원 월급 뻔한데 아이가 넷이니 더 힘들었다. 또 당시 공무원은 자녀 학원 보내는 걸 금기시하는 분위기였다. 애들 아빠가 학원 보내지 말라고 하니 남편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학원 못 보낸 탓에 아이들이 소위 말하는 명문대에 못 갔다. (※첫째 딸은 인천대, 둘째 딸은 숙명여대, 막내 딸은 성신여대를 나왔다. 아들은 미국에서 대학을 나왔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아프다. 아직도 가끔씩 다른 사람처럼 학원 보내고 과외 시켰으면 다들 더 좋은 대학에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나중에 다른 공무원 가족에게 들어보니 다들 몰래 몰래 학원 보냈다 하더라. 내가 바보였다.”

-애들이 학원 보내 달라고 조르지 않았나.

 정=“왜 안 그랬겠나. 친구들 다 학원 가는데 나도 가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안 된다고 할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둘째 딸은 피아노를 잘 쳤는데 피아노 학원을 못 보낸 게 한스럽다. 둘째가 가끔 ‘그때 피아노 학원을 보내줬으면 지금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데 여전히 그 말을 들으면 가슴이 아프다. 다행히 지금 아이들 모두 잘 산다. 손자·손녀도 제법 공부를 잘한다. 미국에 있는 손녀 하나는 MIT, 손자는 컬럼비아대에 다닌다.”

-손자·손녀가 공부 잘하는 게 위로가 되는 모양이다.

 정=“그렇다. 걔들은 부모 잘 만나 하고 싶은 공부 마음껏 하는 것 같아 만족한다. 한편으로는 손자·손녀가 공부 잘하는 걸 보면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우리 애들도 뒷바라지만 잘해줬으면 더 잘되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아쉬움이 있다.”

[1] 1970년대 자식들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 [2] 2010년 부부가 함께. [3] 2010년 강 전 시장 생일에 7명의 손주들과 함께.

-딸들이 아무도 직업을 갖지 않았다.

 강덕기=“모두 아이 낳을 즈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도록 했다. 자식은 엄마가 키워야 하는 거 아닌가.”

-요즘은 바쁜 딸을 대신해 친정 엄마가 손주를 키워주기도 하는데.

 정=“자식은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남편 생각에 동의하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기도 했다. 애들이 넷이나 되는데 누구 아이만 봐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네 아이의 자식을 다 봐줄 수도 없지 않나. 나도 진주여고 졸업하고 결혼해 네 아이를 직접 키웠다.”

-서울시 근무 당시 별명이 ‘도끼’였다고 들었다.

 강="도끼 휘두르듯 일한다고 생긴 별명이다. 어떤 일이든 그 자리에서 결정했다. 아무리 어려운 민원도 자꾸 피하면 안 된다. 직접 만나 얘기를 들어주고, 할 수 있는 해결책은 찾아줘야 한다. 이렇게 소통하면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들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래야 진정 그들을 위한 해결책이 나온다. 만약 들어줄 수 없는 일이라도 그 이유를 제대로 설명해야 한다.”

 정=“집에서도 도끼였다. 남편 성격을 아니까 나도 남편 뜻을 따랐다. 1980년대 초반 강동구청장 시절 철거 문제로 시끄러웠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준비하느라 3만 동을 헐었다.) 철거민들 협박 전화가 끊이지 않고 왔다. 입에 담지 못할 욕은 기본이었다. 자기들은 살던 집에서 쫓겨날 판인데 구청장은 현대아파트에 산다고 소리를 지르더라. 그러나 내가 먼저 전화를 끊지 않았다. 남편 뜻을 따라 나도 그 사람들 얘기를 다 들어줬다. 한 번은 남편을 죽이겠다고 건장한 사람들이 삼지창 같은 걸 들고 찾아온 적도 있다. 나는 무서워서 남편 보고 피하라고 했는데 정작 남편은 나가서 대화를 했다. 죽이겠다고 온 사람들이 갈 때는 정중하게 인사하고 돌아갔다.”

-강남에 살면 듣게 되는 재테크 관련 정보도 많지 않나.

 강=“시장 될 때 공직자 재산 신고를 한다. 그때 보니 죽전에 내가 모르는 땅 3305㎡(1000평) 정도가 있었다. 알고 보니 아내가 부동산 소개로 산 거더라. 물어보니 현대아파트를 팔고 미성아파트로 이사 갈 때 돈이 조금 남았는데 그걸로 샀다고 하더라. 처음엔 기자들이 땅 투기 아니냐고 의혹의 눈초리로 봤다. 답답한 마음에 그제야 직접 가봤는데 도로도 없는 산비탈이었다. 나중에 기자들도 직접 보고 난 후 어이없다며 웃더라.”

 정=“부동산 투자는 그때 딱 한 번 했다. 이사할 때 알게 된 부동산 직원에게 ‘이사하면서 남은 돈 3500만원 정도가 있다’고 했더니 땅을 소개해줬다. 가보지도 않고 그 직원 말만 믿고 샀다. 남편한테는 말 안 했다. 남편이 시장 되면서 이 땅 얘기가 나오길래 ‘내가 남편 인생 망친 게 아닌가’해서 미안했다. 남편에게 정말 많이 혼났다. 나중에 LH공사에서 수용한다고 해서 팔았다. 15년 만에 7억원으로 올랐는데 당시 LH 공사에 수용되지 않은 주변의 같은 규모 땅은 50억원 정도에 팔렸다더라. 땅과 미성아파트를 판 돈으로 타워팰리스로 이사 갔다.”

-은퇴 후 어떻게 사나.

 강=“바깥 활동이 많다. 은퇴 후 더 바쁘다는 말이 실감난다. 약속이 없을 땐 원장으로 있는 21C도시정책개발원 사무실에 간다.”

 정=“난 평생 집밖에 모르고 살았다. 도우미 한 번 부르지 않고 애들 넷을 혼자 키우며 살림하느라 바빴다. 그렇게 밖에 잘 안 나가니 대문 밖은 잘 모른다. 여전히 서울 지리가 익숙하지 않다. 집 치우고 살림하면 하루가 금세 지나간다.”

-정기적인 모임이 없나.

 정="현대아파트 살 때 반상회 하던 동네 아주머니들과 아직도 만난다. 현대아파트가 입주를 시작한 1976년에 우리가 그 동(87동) 첫 입주자로 들어갔다. 우리 집보다 늦게 이사 온 집들이 집전화 개통하기 전이라 우리 집에 와서 전화 빌려 쓰며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10가구 정도 되는데 비슷한 시기에 함께 아이를 키웠고 나이도 비슷하다 보니 친하게 지낸다. 주말에는 길이 너무 복잡해 금요일에 청계산 앞에서 모여 같이 등산한다. 남편끼리도 친해서 가족 모임도 자주 한다. 내가 가끔 놀고 싶을 때 지하철 3호선을 타고 현대아파트 지인 집에 가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이들이 있어 외롭지 않다. 그게 전부다. 40년 가까이 모임을 계속 하니 주변 사람도 다들 신기해한다. 아마 모두 경상도가 고향이라 더 친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여행도 늘 함께 갈 정도다. 말 그대로 형제자매 같은 사이다. 여자들끼리도 모이고 남자들끼리도 모이고 때론 부부가 함께 모인다.”

 강=“난 미성아파트 모임도 있다. 함께 반상회 했던 사람들이다. 일요일에 모여 청계산에 오른다. 가끔 부부가 같이 모이기도 한다.”

-지금 살고 있는 타워팰리스 모임은 없나.

 강=“없다. 우리가 이제 나이가 들다 보니 새로운 모임을 만들게 되지 않는 것 같다. 나이 들고 보니 더 바쁘다. 타워팰리스가 그 전 현대아파트나 미성아파트에 비해 개인주의적인 분위기이기도 하고.”

-타워팰리스에 사는 건 만족하나.

 정=“주부인 나에게는 도우미 없이 살림하기 편해서 좋다. 전에 현대아파트 등에 살 때는 음식물 쓰레기 버리러 아파트 현관 밖에까지 나가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밑에 내려갈 필요도 없이 집 앞에 버릴 수 있다. 단지 안에 목욕탕과 운동시설이 있는 것도 편하고 좋다. 둘이 살기에는 큰 것 같아서 조그만 집으로 이사할까 하는데 애들이 말린다.”

-강 전 시장은 여전히 바쁜 모양이다. 부부가 함께하는 시간은 없나.

 정="요즘은 가끔씩 집 근처 양재천을 같이 걷는다. 나는 운전면허가 없다. 장 보러 갈 때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는 남편이 기사 역할을 해준다.”

글=송정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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