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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본사 서제숙 기자 현지보고|우선하는 국가 이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월남의 한국 장병 비장하던 얼굴>
한달 가까운 체 월 끝에 귀국의 길에 올랐다. 군용기가 즐비한 「사이공」 교외 「탄손누트」 공항 발 서울행 미 공군 수송기 C130기편. 민간 항공기와는 달리 불편한 의자에 「프로펠러」의 폭음이 기내에 요란스럽게 울려 왔다.
잠시 사이에 C130은 밀림에 뒤덮인 「베트남」 땅을 벗어나 남지나 해상에 이르렀다.
「후에」시에서 만났던 한국인 기술자의 반가와 하던 표정, 청룡 부대에서 악수를 나눈 어느 중대장의 비장하던 얼굴, 「사이공」 거리를 활보하던 한국군 장병들, 「퀴논」에서 본 맹호 부대의 검게 탄 병사의 얼굴들... 이역에서 만나는 동포의 모습이란 언제 어디서나 반가운 것이다.
더구나 그들이 조국에서 멀리 바다를 건너 기술자로 또는 목숨을 내건 전사로 애쓰고 있는 모습은 눈물겨운 것이다.
중·소 분쟁이 기자에게 준 교훈은 국가의 이익이 무엇보다도 앞세워진다는 냉혹한 현실이었다.
그리고 「베트남」 국민의 강한 민족 의식은 부러운 것으로 비치기도 했었다. 이 곳에서 기자는 베트남을 찾아보고는 파병 반대라는 종래의 입장을 떠나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는 어느 정치가의 소박한 심정을 이해할 것도 같았다.
그러나 전화에 시달린 「베트남」 국민의 모습-. 그 중에서도 여인들과 어린이들의 죄 없는 수난을 너무나 생생하게 보아온 기자의 가슴에는 모성으로서의 또 다른 입장이 물결쳐 왔다. 그 것은 세계 시민으로서의 양심과도 통하는 것이 아닐까?
「지상의 평화」- 이 것은 「로마」 교황의 회칙 제목이었지만 세 아이의 어머니로서의 감정만을 앞세운다면 한국의 젊은이가 피를 흘리고 있는 「베트남」전을 정시하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가닥의 위안은 고국에 남은 가족>
남지나 해를 건너 「베트남」과 고국을 이어 주는 미군 수송기에는 몇 명의 승객 외에 육중한 짐짝과 ○○구의 영령이 실려 있었다. 젊음을 펴지 못하고 이역에서 숨져 한줌 유골로 남은 귀한 목숨들. 뜨거워진 내 눈시울에는 「델타」 지방에서 본 「베트남」 여인의 눈빛과 「스쿠터」로부터 일용품까지 「베트남」 전역에 넘쳐흐르는 일본 상품들이 차례로 「오버 ·랩」 되어 왔다.
조국은 이들의 죽음에 어울리는 값을 과연 받고 있는 것일까. 그들의 유족은 설움 속에서라도 위안을 받을 한 가닥 명분을 찾을 수 있을까?
1만 5천 「피트」높이를 날아온 C130기는 광주시 상공에서 점차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마음을 「베트남」에 두고 있는 나에게는 고국 하늘을 날고 있다는 실감이 나질 않았다. 밀림에 뒤덮인 「베트남」 땅들이, 굽이쳐 흐르는 「메콩」 강의 줄기가, 한국군 병사들의 모습이, 고아와 지친 「베트남」 여인들의 얼굴이 차례로 머릿속을 스쳐갈 뿐이다.

<김포공항의 찬바람 피는 물보다 짙다>
피는 물보다 짙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감정.
세계 시민으로서의 양심이나 책무, 「베트남」에서 돌아오는 기자의 마음속은 참으로 복잡했다. 이 같이 단순하지 않은 심정은 「베트남」을 찾는 한국인이면 누구나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어느덧 서울 상공에 다다른 미국 수송기는 착륙 준비를 서둘렀다. 김포공항. 「후에」 「퀴논」 등 「베트콩」의 지상 포화를 피해 급강하해야 하는 「베트남」에서와는 달리 김포에 닿는 C130의 발길은 부드러웠다.
뒷문이 열리자 찬바람이 스며들어 왔다. 온몸이 으스스 떨렸다. 그 것은 소매 없는 「원피스」 차림으로 땀을 흘리던 「사이공」에서 7시간 반만에, 「오버 코트」 속으로 찬바람이 스며드는 서울에 왔다는 위도차 때문만은 아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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