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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죄업·정치악덕|"길을 닦아 놓으니 광녀가 먼저 간다" - 홍종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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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이름을 걸고 사기·협잡·모리를 일삼는 일처럼 인간 죄업 중 가장 심한 것은 없을 것이다. 이는 나라와 민족을 팔고 온 국민 앞에 거짓을 진실이라고, 사리 사욕을 나라와 국민에 대한 충성이라고 세상의 눈을 어지럽히며 나라의 정치를 더럽히는 일이 되기 때문인 것이다. 속담에 『길을 닦아놓으니 미친년이 먼저 간다』는 말이 있다.
민주주의 헌법이 마련되고 정치활동의 자유가 국민의 떳떳한 권리로 되어 있다고 해서 그 엄숙한 헌법과 그 자유가 양심도 식견도 지조도 없는 무리들에게 유린될 수 있겠는가.
바로 오는 5월에 실시될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두 차례 선거를 앞두고 온 세상이 정치바람에 들끓고 있다. 정치제도상 도 정치도덕상 있을 법도 아니한 정당과 대통령후보, 국회의원 후보자가 여기저기 웅성거리고 있다.

<2>
나라가 가난하고 보면 나라의 정치에 참여코자 하는 정당과 정치인들은 먼저 스스로가 자신들의 가난을 무엇으로써 어떻게 극복해 나가고 있다는 것을 국민 앞에 보여 줄 수 있어야할 것이다. 그렇다고 가난의 주접을 떨라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정치에 나서자면 피죽을 먹고 지내더라도 제 끼니는 제힘으로 끓여 먹을 채비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이점은 개인의 경우나 정당단체의 경우나 마찬가지라고 할 것이다.
정치를 한다고 해서 정치자금이라는 이름을 빌어 체면 없이 구걸이 아니면 일종의 협박의 성질을 가진 행위로써 돈을 끌어 모아 풍성거린다면 그 정치활동이 무엇이 떳떳할 것인가. 그래서 정치자금의 양성화라고 하여 경제계의 사업단체에서 돈을 거두어 중앙선거위원회를 거쳐 각 정당에 분배케 하는 법도 생긴 것을 본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나 떳떳한 일이겠으며 또 이러한 선거자금을 노리고 당선의 가망이 있고 없고 상관없이 간판을 내걸고 나서는 정당은 없는지? 정치의 부패와 악덕이 대개 돈 때문임은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다. 심하면 돈으로 사고 팔고 또 꾀어 허수아비를 내세우고 상대편을 해치는 음모도 없지 않음을 본다. 적어도 정치활동을 한다고 하면 정당이고 개인이고 정치적 의견과 목표를 가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여당이 지난 4년 동안의 업적을 토대로 정권의 연장을 도모하는데 대해서 여당이외의 정당은 모두가 야당이 아닐 수 없고, 그 명분은 여당과 그 정부의 실책을 비판·규탄함으로써 그 정권을 빼앗는데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야당의 입장에 있다면서 야당을 해치는 일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무엇이겠느냐. 결과적으로 여당의 승리를 위한 별동대밖에 될 수 없을 것이다. 정치의 일이 돈과 음모로 혼란을 공작케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3>
정치가가 되려면 높은 덕망과 지혜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정치가의 언동은 어디까지나 조리에 밝고 그 판단이 언제나 공명정대하여 많은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얻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정당이나 정치인들 중에는 조리를 찾기보다도 억지를 가지고 힘이라고 간주하는 일이 많은 것을 본다. 그러한 일은 특히 선거 때에 잘 나타나고 있다. 부정·불법을 저질러도 분수 없이 억지를 범한 예로서는 3·15의 선거와 4·19의 피의 희생으로 무너진 자유당정권이 다시없는 역사적 표본이 될 것이다.
마침 여당의 민주공화당과 이에 대항할 유일한 야당으로 일러온 신민당이 각기 지구책임자와 입후보 공천자를 결정하고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나서려는 때이다. 이때에 공천에서 떨려났다고 불평하고 새로 정당을 만드느니 또 다른 정당으로 당적을 옮기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들려 온다. 그 중에는 국회의원에 출마하기 위하여 오랫동안 터를 닦아온 착실한 분도 있을 것이다. 또 그 때문에 무엇을 빙자했건 빚을 많이 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런 불평과 당적이동이란 다 무엇이냐? 여기에도 억지가 그 대부분일 것이다. 정당보다도 개인의 명예와 의욕을 앞세우려는 사람에게서 나라의 정치를 위해서라면 더 바랄 것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아니면 나라의 정치가 잘될 수 없다는 견식이나 신념을 남달리 가졌다면 공천을 받느냐 못 받느냐 하는 것쯤에는 초연할 수 있는 높은 덕망을 가졌어야할 것이다. 양심도 체면도 없이 저라고 나서거나 당적을 옮긴다거니 신당을 꾸민다느니 하는 일들은 모두가 억지의 정치적 자살행위가 될 것이다. <홍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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