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등급 떨어져도 대출금리 안 올릴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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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김한 전북은행장은 “중소기업·서민에게 1등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김성룡 기자]

“신용등급 한두 단계 떨어졌다고 대출금리 올리지 마라. 돈 떼여도 책임 묻지 않겠다.”

 최근 주주총회에서 연임된 김한(59) 전북은행장은 두 번째 임기를 맞아 1000명의 임직원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덩치는 꼴찌지만 중소기업·서민에겐 1등이 되자”는 취지였다. 김 행장은 1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전북은행의 핵심 고객은 신용등급 3~6등급의 중소기업·중산층·서민”이라며 “이들과 고통을 분담하고 신뢰를 쌓아 30년 가는 강소은행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최근 전북은행이 새로 지은 서울 여의도 JB빌딩에서 진행됐다. 오는 6월 전북은행·JB우리캐피탈의 지주회사인 JB금융지주가 이곳에서 출범한다. 김 행장으로부터 두 번째 임기와 JB금융지주 출범을 맞는 각오를 들었다.

 -왜 대출금리를 올리지 말라고 했나.

 “요즘 같은 불경기에 대출금리를 인상하는 건 중소기업이나 서민에겐 파산선고와 마찬가지다. 이들이 살아야 우리도 살 수 있다. 대출을 충분히 해줘야 한다. 모자라게 주면 안 주는 것만 못하다. 전북은행은 지난 3년간 중소기업 대출을 세 배 이상(1조4000억원→4조4000억원) 늘렸다.”

 -그렇게 하면 부실 위험이 커질 텐데.

 “우리만의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문제없다. 철저한 지역밀착 영업을 통해 고객 속사정을 일일이 파악할 수 있다. 한 다리만 건너면 어느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알 수 있다. 은행 고객 대다수가 전북 주민이거나 전북이 연고인 이들이라 가능한 일이다. 이런 방법이 신용등급만 보고 대출심사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이 적다.”

 -신용등급 3~6등급을 핵심 고객으로 정한 이유는.

 “대형은행을 이용할 때 제 대접을 못 받는다고 불만을 가진 사람이 많다. 이들에게 좋은 금융 상품을 제공해 평생 고객으로 만들 것이다. 이 전략이 성공하면 전북은행이 한층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 18개 시중은행 중 자산규모 꼴찌이지만 내실은 가장 튼튼한 은행으로 자리 잡는 게 목표다.”

 김 행장은 20년 가까이 증권업계에서 국제금융 전문가로 활동하다 2010년 3월 전북은행장이 됐다. 지난 3년간 ‘경영실험’이라 할 정도의 공격적인 경영전략을 펼쳤다. 우선 전북권에만 갇혀 있던 영업망을 수도권으로 확대했다. 취임 전 1개밖에 없던 서울 지점을 9개로 늘린 게 대표적이다. 은행 지점은 1층이라는 고정관념도 깼다. 늘린 점포는 모두 건물 2, 3층에 100㎡ 이하를 빌려 직원 3~4명이 근무하는 미니점포다. 2011년에는 자동차금융 전문 여신회사인 우리캐피탈을 인수해 1년 만에 자산규모를 2.5배로 키웠다.

 -조직문화도 확 바꾼 것으로 알고 있다.

 “줄줄이 도장을 받아야 결재가 나던 관행을 없애고 전자문서로 결재하는 ‘페이퍼리스(Parerless) 시스템’을 도입했다. 덕분에 안건 하나에 3주씩 걸리던 결재 기간이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게 됐다.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리던 정례 임원회의를 없애고, 부서별 직원회의도 줄였다. 대신 전 직원에게 태블릿PC와 노트북을 지급해 소통 속도를 높였다.”

 -지난해 웅진그룹 대출 500억원 때문에 순이익이 줄고 주가가 급락하기도 했다.

 “가슴 아프지만 좋은 경험이 됐다. 역시 우리 규모에 그런 대형 거래는 안 맞는다는 걸 깨달았다. 다시는 안 할 거다. 소매금융에만 집중하겠다. 참고로 주가는 올 들어 다시 올랐다(웃음).”

 -JB금융지주를 출범하는 이유는 뭔가.

 “우리캐피탈을 인수했기 때문이다. 전북은행과 우리캐피탈을 총괄하는 지주사를 통해 상호 정보를 공유하고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지주사가 있어야 양쪽의 리스크 관리도 된다. 지금처럼 캐피탈이 은행의 자회사로 있으면 어느 한쪽이 어려워질 때 리스크가 전염될 수 있다.”

글=이태경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김한 경기고와 서울대 기계공학과, 미국 예일대 경영학석사(MBA)를 마친 뒤 삼일회계법인·동부그룹에서 일했다. 1989년부터 대신증권에서 국제영업상무·기획본부장을 맡으며 국제금융·투자은행(IB) 전문가로 활동했다. 2004~2007년 메리츠증권 대표이사 부회장을 지냈다. 김연수 삼양사 창업주의 차남인 김상협 전 국무총리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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