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몽 유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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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예술이냐, 외설이냐의 한계처럼 모호한 것은 드물다. 동서고금을 통해 이 문제를 에워싸고 취체당국과 예술가 사이에는 끊임없는 논쟁이 벌어졌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치고서도 만인을 승복시킬 만큼 명확한 한계를 짓고 매듭이 지어진 예는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만 예술 작품의 외설성 여부를 다룸에 있어, 꼭 한가지 외면할 수 없는 기준만은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그 작품이 참으로 예술작품을 예술로서 감상할 능력이 있는 특정인에게만 공개될 성질의 것이냐, 그렇잖으면 연소자를 포함한 무의식 일반대중에게 널리 공개될 것을 전제로 해서 만들어진 것이냐 하는 물음이 곧 그것이다.
한때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차털리 부인의 사랑』의 예술성을 부인할 사람은 거의 하나도 없을 것이지만, 그것을 영화화한 작품이 일본대심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실상 같은 예술작품이면서도 그것을 영화화했을 경우에는 외설여부를 따지는데 정작 예술성의 문제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다.
세계의 영화평론가들로부터 불후의 명작이라고 절찬을 받은 「벨히만」의 영화 『심연』이 서전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거의 상영불능이 된 것도 이 무의식 일반대중에게 주는 충동적인 악영향을 법이 용납할 수 없다고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15일 서울 형사지법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유현목 감독의 작품「춘몽」에 대해서 이와 같은 취지 의 판결을 내려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사회일역에 나체를 노출시킨 것이 공익을 위해 유해라는 거이었다. 문제의 작품을 본 일이 없는 우리로서는 그 예술성여부를 논할 자격이 없지만, 그것이 외설영화라는 판정을 받게된 것은 확실히 우리나라의 예술인들에게 준 하나의 경종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 같다. 외설의 정도에 있어 이보다도 더 심한 음화. 음서 등이 얼마든지 범람하고 있는 게 우리의 실정이기 때문이다. 예술을 빙자하여 예술과 외설의 아슬아슬한 한계선을 넘나드는 「코프」 예술(구관예술)에 관한 논쟁이 바야흐로 이 땅에서도 불꽃을 튀길 모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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