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경찰, 출금 요청 흘려 언론플레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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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수사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출국금지 요청이라는 무리수를 뒀고, 출국금지가 내려진 것도 아닌데 요청 사실을 미리 흘린 것은 수사 원칙에 어긋난 경찰의 성급한 언론 플레이다.”(검찰)

 “혐의를 뒷받침할 만한 자료를 첨부했는데 기각한 것은 검찰이 자기 조직 출신을 보호하기 위해 나선 게 아니냐.”(경찰)

 김학의(56)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경찰의 출국금지 요청이 28일 기각된 것을 둘러싸고 경찰과 검찰이 공방을 벌이고 있다. 김 전 차관은 건설업자 윤모(52)씨로부터 성접대를 받은 의혹 등으로 경찰 수사를 받아왔다.

 이에 대해 검찰은 “원칙대로 판단했다”는 입장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박순철)는 경찰이 요청서를 보낸 지 만 하루가 지난 28일 오후 일부 인사에 대해서만 법무부에 출국금지를 요청하도록 지휘했다. 전현준 중앙지검 3차장은 “담당 검사가 시간을 할애해 기록을 처음부터 면밀히 검토했다”고 설명했다. 전직 차관이 연루돼 민감한 사안인 만큼 범죄 혐의와의 연관성, 출국의 우려 등 법리를 엄격하게 적용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출국금지가 거주 이전의 자유, 여행의 자유 등 기본권을 제한하는 조치임을 감안해 통상의 기준대로 처리했다”고 말했다.

 출금 요청 기각으로 경찰 수사가 제한을 받지 않겠느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기각 사유를 상세히 기재해 보냈으며 경찰에서도 이의가 없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검찰 일각에선 출금 요청서가 검찰에 도착하기도 전에 언론에 공개된 것에 대해서도 다분히 경찰의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보고 있다. 경찰이 ‘성접대 동영상’의 증거 능력이 의심 받는 등 수세에 몰리자 출금 요청 사실을 흘리면서 반전을 꾀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출금 조치가 내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출금 요청 사실이 공개된 것은 이례적이다.

 경찰은 지난 20일 건설업자 윤씨 등 3명에 대해 출금 조치 요청을 하면서 “출금 요청서에 김학의 전 차관이 언급된다”고 일부 언론에 흘리기도 했다.

 경찰의 출금 요청을 받고 법무부가 실제 출금 조치를 내릴 때까지는 통상 1~2일이 소요된다. 이 때문에 출금 요청 사실이 미리 공개되면 사실상 출금 대상자에게 도피할 시간을 벌어주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출국금지는 수사상 필요한 피의자나 참고인이 도주 또는 출국해 수사에 차질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내리는 조치다. 출금이 됐다고 해서 혐의 사실이 특정되는 것도 아니다.

 검찰 관계자는 “출국금지의 경우 수사 대상자의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과 연결돼 있어 보안을 철저히 지켜야 하는 데도 경찰이 수사를 유리한 국면으로 이끌기 위해 언론에 요청 사실을 흘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 수사팀은 “검찰이 자기 조직 보호에 나선 게 아니냐”며 검찰과 법무부를 비난하는 분위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찰 간부는 이날 “핵심 관련자의 진술 등 수사자료를 충분히 첨부했는데도 김 전 차관에 대한 출금 요청을 기각한 것은 검찰이 수사를 방해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강현·심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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