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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어스름 잠결에 들으면 추적추적 비 내리는 소리. 창 밖은 아직 어두워 밤중인지 새벽녘인지 짐작할 수가 없다. 창 밖이 어두운 것은 날이 밝지 못한 탓인지, 날은 밝았으나 비구름이 두껍게 깔린 탓인지 모르겠으나, 그런 어둠 속을 내리는 비는 달고 곤한 두벌 잠을 부른다.
우수가 지나고도 얼룩져 남아있던 원근산의 잔설을 녹이며 비는 내리고 있을 것이지마는 막상 그 소식은 자욱한 비구름 속이라 가릴 길 없고 얼룩은 길에 발목을 앗겨 먼 눈을 팔 겨를도 미처 없다. 그러고 보니 길가는 사람들의 차림도 외투와 「레인·코트」가 반반은 될까 싶다.
겨우내 「시클라멘」 「히야신스」 등 철을 앞당겨 피어서 어딘가 이화감으로 어리둥절케 하던 꽃가게 앞에서도 아무런 어긋짐 없이 눈길이 머문다. 구근들의 새로 눈터오른 순들의 여릿한 담황도 추워 보이지가 않아 좋다. 새순들을 「비닐」로 정성 들여 덮어 둔 것은 언제 변덕을 부릴지 모를 날씨를 염려하는 꽃가게 사람들의 봄마음씨 일시 분명하다.
지금쯤 남쪽 볕바른 산에는 산수유가 눈 텃을 것이고, 들에는 냉이며 씀바귀 해서 봄 나무새들이 돋아나고 있을 것인지. 움 속에서 자란 상치가 있기는 하지마는 긴한 봄 맛은 아니고, 아무래도 텁텁한 겨울 입덧은 들나물 쓴맛으로 가시고 볼일이다.
봄의 맛으로는 들나물도 좋지마는 민물에서 잡히는 조개도 일미다. 봄 조개는 예로 이르는 것으로 봄 조개 심시무레한 국이나, 달래를 석어 끊인 된장찌개의 짭질한 맛도 허전한 반상을 가꾸는 새 계절의 미각이다. 왕유는 시에서 「꽃가지가 흔들리며 함에 봄바람이 차도다」라고 했다. 비는 내려도 봄이 활짝 피어날 때까지 아직도 몇 순 겨울의 심술이 변덕을 부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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