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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접대 연루 증거 불충분” … 검찰, 김학의 출금 요청 기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성접대 의혹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김학의(56)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경찰의 출국금지 요청이 28일 기각됐다. 법무부와 검찰은 이날 김 전 차관이 이 사건과 관련됐다는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같이 결정했다. 검찰 관계자는 “출국금지 조치를 한다는 의미는 당사자가 피의자 신분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이라며 “경찰이 김 전 차관의 범죄 사실을 소명할 충분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검찰과 법무부가 경찰의 출국금지 요청을 불허한 것은 이례적이다. 만약 당사자가 출국해 수사가 진행되지 않을 경우 검찰이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검찰 측에선 “김 전 차관이 도피성 출국을 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전날 서울중앙지검에 김 전 차관 등 14~15명에 대한 출국금지 요청서를 제출했었다. 출국금지 대상자에는 김 전 차관을 비롯해 대형 병원장 P씨, 전직 고위 공무원 S씨, 현직 고위 공무원 P씨 등 건설업자 윤모(52)씨로부터 성접대 등 향응을 받은 의혹을 받고 있는 인사들이 대부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수사 관계자는 “출국금지를 요청한 것은 필요성과 상당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필요성은 수사를 위해 출국금지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상당성은 혐의와 관련돼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검찰과 법무부는 경찰의 출국금지 요청서에 첨부된 수사서류를 면밀히 검토했지만 대상자 절반 가량이 혐의를 입증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경찰 수사는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됐다. 출국금지는 임의수사에서 강제수사로 전환하기 위한 기초 단계다. 받아들여질 경우 김 전 차관을 포함한 대상자들은 참고인에서 피의자로 바뀌게 된다. 하지만 이 같은 경찰의 구도는 처음부터 어그러지게 됐다. 출금이 불허된 상황에서 압수수색영장 신청 등 앞으로의 수사 절차도 경찰 의도대로 진행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두 가지 가능성이 제기된다. 우선 경찰의 수사가 부실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지난 18일 윤씨 사건에 대한 내사 사실을 이례적으로 언론에 공개했다. 김 전 차관 등 주요 사건 관련자에 대한 소환 조사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이런 가운데 일부 언론이 김 전 차관의 실명을 공개했고, 김 전 차관은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니다. 책임을 묻겠다”며 차관직에서 물러났다.

 경찰은 김 전 차관이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진 ‘성접대 동영상’을 입수하면서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2분30초 분량의 이 동영상은 김 전 차관의 사건 연루 의혹을 입증할 핵심 증거물로 여겨졌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선 ‘해상도가 낮아 얼굴 대조 작업에서 (김 전 차관과의) 동일성 여부를 논단하는 것이 곤란하다’는 분석 결과를 보내왔다.

 동영상의 증거 능력이 의심받는 상황에서 사건의 핵심 관련자들 사이에 진술이 엇갈리고 일부 참고인은 진술을 번복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경찰이 이례적으로 출금 요청 사실을 흘린 것에 대해 경찰 내부에서도 “너무 성급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당초엔 경찰이 어느 정도 증거를 확보했을 경우 출국금지 요청을 검찰이 거부하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많았다. 나중에 김 전 차관 등 관련자들이 출국해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면 검찰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써야 하기 때문이다.

 검찰도 경찰의 출국금지 요청을 놓고 만 하루 동안 고심했다. 그러나 “경찰이 검찰조직에 상처를 입히기 위해 처음부터 표적 수사를 벌인 게 아니냐”는 검찰 내부의 팽배한 시각이 이번 출금 기각의 한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윤씨의 성접대 의혹 사건은 검경 갈등으로 비화되게 됐다. 경찰은 당장 김 전 차관 등 핵심 관련자에 대한 수사 자료를 보완해 출국금지 요청을 다시 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는 “경찰이 김 전 차관의 혐의점과 관련해 핵심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출국금지 요청을 다시 하더라도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정강현 기자

◆ 성접대 의혹 사건 일지

3월 18일 경찰청 특수수사과, 동영상 내사 착수

20일 경찰, 2분30초짜리 김 전 차관 추정 인물 찍힌 동영상 확보. C씨로부터 “김학의 전 차관을 직접 상대했다”는 진술 확보

21일 김 전 차관이 사표 내자 청와대가 수리

22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동영상 확인 결과 ‘동영상 속의 인물이 김 전 차관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두 인물의 얼굴 윤곽선이 유사하다’는 의견 표명

27일 경찰, 김학의 전 차관 등 사건 연루자들에 대한 출국금지 요청

28일 법무부와 검찰, 김 전 차관 등 일부 사건 연루자들에 대한 출국금지 요청 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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