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을 든 풍류객' 겸재·단원 … 쩌렁쩌렁한 화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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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 절벽을 타고 떨어지는 폭포의 장엄하고 씩씩한 기세를 실경보다 더 가슴에 와 닿게 그린겸재 정선의 ‘박연폭도’. 기와 세가 넘치는 조선 후기의 시대 움직임이 시원하게 담겼다.

내리꽂는 물줄기 기세가 땅을 후벼팔 듯 거침이 없다. 천지를 울리는 물소리가 들릴 것 같다. 기가 흐르고 세가 솟구쳐 그 격정이 그림을 뚫고 나올 듯하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화가 겸재(謙齋) 정선(鄭敾)의'박연폭도(朴淵瀑圖)'는 우리 산수를 우리 식으로 표현한 진경산수화다. 자연에서 얻은 감흥이 화가의 마음을 거쳐 실경보다 더 우렁우렁한 울림을 얻었다. 18~19세기 조선 문화의 활력과 신명, 자신감과 새로운 물결을 느낄 수 있는 그림 한 폭이다.

4월 6일부터 20일까지 서울 소격동 학고재에서 열리는'조선후기 그림의 기(氣)와 세(勢)'전은 이렇듯 기와 세가 강한 조선 후기의 단원 김홍도 등 14명의 작품 43점을 선보인다. 고서화전으로 이름난 화랑답게 옛 그림을 모은 안목이 고미술 애호가를 즐겁게 한다. 겸재의 '월송정도', 이재관의 '고사한일도' 등 처음 공개되는 작품도 19점 나왔다. 기획자인 이태호 명지대 교수는 "조선 후기에는 에너지가 넘치고 파워풀한 그림이 많이 그려졌기에 전시 제목을 '기와 세'라 했다"고 설명했다.

겸재의 '박연폭도'가 '세'의 그림이라면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의 '장백산도(長白山圖)'는 '기'의 그림이라 할 수 있다. '박연폭도'가 격정적 감정을 맘껏 쏟아냈다면, '장백산도'는 절제와 응축으로 조선 선비의 문기(文氣)를 드러냈다. 호생관(毫生館) 최북(崔北)은 '내 마음 끌리는 데로 그린다'는 파격의 기세를 보여준다.

재미있는 대목은 겸재가 그린 소품'어촌도'와 '관폭도'에 깃든 사연이다. '박연폭도'에서도 드러나듯 남과 여를 상징하는 형상이 그림 속에 숨어있다. 주역(周易)에 밝았던 겸재가 음양론(陰陽論)에 따라 자연을 표현하며 남근과 여근을 그려넣은 것이다. 비스듬히 솟은 언덕의 형세는 남근이요, 쏟아지는 폭포 언저리의 모양새는 음부를 닮았다. 이 교수는 "그래서 이 그림의 소장자는 두 폭을 나란히 걸어놓고 감상하더라"고 이 교수가 귀띔했다. 02-720-1524.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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