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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총선에 앞서서(1) - 유진오 신민당 당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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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선거의 맥박은 해빙과 더불어 뛰기 시작했다.
「동시선거」니 「분리선거」니, 여·야간 대화의 길이 트일 듯 막힐 듯, 「무드」는 고조 되어간다. 한 표의 주권을 행사하는 날은 이제 백일도 안 남았다. 바쁜 일정의 총선 가도에서 여·야당 영수들의 흉중에는 어떤 구상이 펼쳐져 있는지? 이들의 가슴을 「노크」 해 본다.
통합야당 신민당의 당수 현민 유진오씨는 그 나름의 정치 지표를 다음과 같이 세우고 있다. 『통합은 실현되었지만 실질적인 통합까지는 어려운 문제가 둘러 싸여 있어. 가장 중요한 건 해위(윤보선씨)와 나와의 단합이야. 둘 사이에 자주 얼굴을 붉히게 되면 문제를 풀어 갈 길이 막히게 돼.』각 정파의 대립된 이해 그리고 묵은 감정 대립이 그대로 깔려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중요한 문제는 실력자 선에서 해결을 보아야 해.』당헌은 윤 후보와 유 당수가 모든 문제를 합의 결정토록 규정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실력자 중심으로 일을 처리해 가겠다는 것이 유 당수의 운영지침-. 이 지침은 유 당수가 정당 일에 익숙하지 못한 데도 이유가 있다. 『내가 양보를 잘 한다고 원망하는 이도 있지. 내가 양보해야겠다고 판단한 것도 있지만 어떤 경우는 잘 몰라서 승낙한 것도 있어. 이래서 실력자 선에서 얘기하게 되면 그 과정을 듣고 내가 문제를 충분히 알 수 있게 될 것이고….』
민중계는 그들의 대표인 유 당수가 정당인 들을 잘 모르고 그 때문에 지구당 조직책이나 국회의원 공천 문제에서 터무니없는 양보를 하게 될 것을 가장 염려한다. 유 당수도 이 점에 관해 예민하다.
『나는 인선 문제를 협의하게 될 때는 그 대상 인물들에 관해 공부한다. 나는 사리가 맞지 않는 일 처리는 해위와 다투는 한이 있더라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어떤 사람에 관해 다섯 가지 밖에 모르는데 해위가 다른 두 가지 점을 더 내놓으면 나로서 더 우길 도리가 없지 않느냐.』는 것.
유 당수는 정파의 이익을 전연 돌보려 하지 않는 데서 민중계의 원망을 듣는다. 적어도 그가 민중당을 대표하여 통합으로 끌고 간 이상 민중계의 이익을 지켜 주어야 할 도의적인 의무가 있고 총선 후의 그의 정치 구도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것이 주변의 얘기다.
『정당인이 자기의 이해를 떠날 수 없는 것은 나도 인정하고 있어. 그러나 내가 보기엔 이점이 너무 지나친 것 같아. 자신과 계보의 존중도 있어야 하지만 또 정치 지표로 뭉칠 수도 있어야 할 것 아냐.』라는 것이 유 당수의 대답-.
유 당수는 여당과의 대화를 기피하지는 않는다. 『공화당이 성의 있게 문제를 다룰 자세가 되어 있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만나 얘기 할 수가 있어. 다만 그들의 특수한 수법의 대화를 단절하고 있는 거지.』 그는 이 소신대로, 예고 없이 찾아 온 정태성(공화) 의원과 만나 김종필 당의장과의 면담도 승낙했고 14일에는 공식으로 여·야 대표자 회의를 제의하기도 했다.
그는 대통령 후보를 양보한데 대해 우선 지지해 주었던 분들에게 『기대를 어겨 미안하다.』고 했다.
『내가 후보를 사퇴하자 실망했다는 편지와 전보가 계속되고 심지어 내게 와서 눈물을 흘리는 젊은이도 있었지만...야당 대통령 후보가 둘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처음부터 판단했어.
내가 민중당 대통령 후보를 수락하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야당 사람들 중에 상당수가 대통령 선거는 사실상 맘속으로 포기하고 어떻게 하면 국회의원에 당선될 수 있을까하는 문제에만 집착해 있더군. 이래서야 선거는 하나마나 아닌가라는 생각이 더 절실해졌지...』
그는 다가오는 선거전, 그리고 선거후의 신민당의 기류에 대해 기대와 불안을 함께 안고 있다.
『윤보선씨와 박순천·유진산씨 사이의 대립, 민중계와 신한계의 충돌 가능성, 이런 불씨는 얼마든지 있지만 일을 해 가는 과정을 통해 해결될 수 있으리라고 믿고 있어. 또 지금은 총력을 집결해야 할 선거 때문에 일시 극복되리라고 봐. 문제는 이 같은 외적압력이 없어지는 총선거 후지.
나로서는 다음 전당대회가 열릴 때까지 실질적인 통합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지만 묵은 감정이나 계보의식 등 구각을 탈피하고, 그래서 건전한 근대적 야당으로 기반을 굳힐 수 있느냐의 판가름은 다음 전당대회가 될 거야.』
올해 진갑인 현민은 숙제를 총선 뒤로 넘겼다. <이영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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