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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운 한·일의 선린 - 홍종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미운 아이 떡 한 개 더 준다.』는 말도 있다. 그럴 수도 있다. 바로 3년전 군정에서 민정으로 넘어섰던 1964년 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지금보다는 이 박사 때가 나았고 이 박사 때보다는 일본 통치 때가 더 나았다고 말하는 한국 사람들이 많다』든가, 또 한국 군인들이 『싼 봉급을 받고야 배가 고파서 어떻게 대포를 둘러지고 다니겠느냐고 불평을 늘어놓아도 지휘관들이 아무 말도 못하는 형편』이라든가 하는 따위로 억측과 조작을 일삼던 일본의 대신문사 기자였던 그가 3년 후 오늘에 와서 「신문의 신사도」를 말하며 「하와이」로 망명했던 이 박사를 국민장으로 맞이했다는 것은 『과거의 영웅을 대하는 신사적 정신이었다.』고 신사도를 말하게끔 된 것을 보면 정부가 우리들 국민의 세금으로 그를 초청했던 보람이 없지 않은 듯 하다.
문제는 앞으로 일본 사람들의 한국에 대한 태도가 언제쯤 편견 없는 정상적인 이웃 관계를 가질 수 있게 되겠느냐 하는 것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일 회담 석상에서 일본의 수석 대표가 일본의 한국통치 36년이 한국의 근대화를 위하여 유익했다고 하여 크게 말썽 되었던 것은 그 사람 「구보다」의 폭언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 바로 수년 전 서울에 왔던 일본의 한 대학 교수가 이곳 대학강당에서 「구보다」의 폭언과 똑같은 말을 했다가 마침내는 사과하고 취소했던 일도 있었던 것이다. 한·일 협정 이후에도 협정의 규정이나 정신을 존중치 않는 태도가 한 두 가지가 아닌 것을 보고 있다.
재일교포의 영주권 등록에 대해서나 어업협력 자금에 의한 선박도입에 관한 것을 비롯한 청구권 자금에 관한 것, 또 한국의 북양 어업 개척에 대한 방해 공작이라든가, 여러 가지 점에서 일본의 한국에 대한 태도는 과연 어느 정도로 언제나 이웃다운 이웃노릇을 하게 될는지 의문이 적지 않은 것이다.
중국이나 동남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대해서는 저들의 「대동아 전쟁」때의 침략행위에 대한 사과와 배상의 태도가 제법 정상적이라고 할만큼 공손하면서도 한국에 관해서는 한·일 회담 14년 동안만 하더라도 번번이 회담을 천연하기 위하여 트집을 잡아 온 것을 볼 수 있었다. 저들의 소견으로는 한국을 먹은 지 이미 반세기에 피가 되고 살이 된 것을 억지로 뱉어 놓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원통하게 여기며 앞으로도 한국은 언제나 저들의 손아귀에 들어야 할 것을 생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일본이 연합국에 대하여 무조건 항복을 하게 된 경위나 평화조약이 이루어지기까지의 여러 가지 문서에 의하면 일본은 과거의 침략행위에 대하여 모든 관계 국가에 깊은 사과와 배상을 하기로 되어있다. 그러나 한국에 대해서만은 국교 정상과의 조약을 맺으면서도 아직 이렇다 할 사과의 말을 하지 않고 있다.
저들의 침략에 의한 가장 혹독한 피해를 입은 것이 한국임을 저들이 모를 일도 아닐 것이고, 또 저들이 패전 후 페허와 같은 그 처참한 가운데서 부흥 재건을 보게 된 것이 바로 한국땅이 잿더미가 되고 한국 청년들의 피가 내를 이룰 정도로 처참했던 그 6.25의 전쟁의 덕이었음을 저들이 인정치 않을 수도 없는 바이거던 지금 한·일 협정에 의하여 과거의 침략에 대한 배상의 성질을 가진 청구권에 의한 자금을 한국에 내야 하는 것을 마치 한국에 대하여 무슨 은덕이나 베푸는 것 같은 태도 조차 보이려는 수작이 들려오기도 한다.
문제는 한국과 일본의 가장 가까운 거리에 놓여 있는 두 나라가 어떻게 하면 정상적인 이웃관계를 가질 것이냐 하는 것은 오늘 보다도 내일의 문제로서 더 큰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 일본 사람들은 일본 사람으로서 차려야 할 도리를 차려야 할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는 우리로서 우리들의 떳떳한 태도를 굳이 가져야 할 것이 저들로 하여금 저들의 도리를 차리게 하는 일이 될 것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떳떳한 태도라고 함은 한 입으로 말해서 우선 「나」는 「나」라는 정신에 투철하여야 할 것이다. 「나」라는 한민족의 역사와 문학의 뚜렷한 창조의 배경을 가지고 있는 이상, 우리는 남 앞에 언제나 마땅히 자주 독립의 떳떳한 정신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거의 반세기 동안 저 일본 사람들의 지배 밑에 쓰라린 압박의 고초를 면치 못했다는 것이 저들 일인들에게는 우리에 대한 편견이 되고 우월감이 될 수 있고, 우리들 사이에는 자칫하면 비굴한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본말의 예를 말해도 흔히 『일본말도 외국어니까』 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우리말 속에 일본말을 간간 섞어서 쓰는 것을 본다. 일본말이 어째서 영어나 불란서 말에 비길 수 있는, 같은 종류의 외국어가 될 수 있겠는가. 우리를 압박하며 약탈·지배해 오던 그 일본말이요, 우리가 저들 앞에 비굴하게 아첨하던 그 일본말이 어째서 외국어로서 우리 앞에 동등의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것부터가 문화적 침략을 받아 온 자의 떳떳치 못한 태도가 될 것이다.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되, 받은 만큼 주고, 준 만큼 받을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근자에 듣건대 우리 나라 사람들의 일본 사람들과의 상종은 너무도 지나치게 대접이 용숭하다는 소문을 듣는다. 평상의 교제에도 과공비례라고 하여 지나친 대접이나 공손은 예가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 일본과의 새롭고 좋은 관계를 위하여 먼저는 우리가 떳떳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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