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지지도 낮게 출발하는 게 낫다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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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정애
논설위원

뭐 그런 일로 눈물을, 싶을 때가 있었다. 2009년 9월 청와대 참모와 얘기하던 중이었다. 그는 “대통령이 남대문 시장을 방문한 사진이 신문에 실렸는데 봤느냐”고 묻더니 이렇게 말했다. “사진 속의 수백 명 얼굴을 하나하나 짚어보았다. 싫어하는 기색이 없더라. 지난해 촛불시위 때와는 정말 달랐다. 격세지감이 들었다. ‘눈물이 나겠다’ 싶더니 정말 눈물이 주르륵 흐르더라.”

 시장 방문으로부터 10일쯤 지난 시점이었다. 그런데도 그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2008년 광화문에서 느꼈던 적의(敵意)와 사진 속의 호의(好意) 사이의 대비가 통렬했나 보다.

 그는 그러곤 “정말 지지율이 중요하다”는 말을 했다. 그 무렵 부동산 폭등 조짐에 도입한 부채상환비율(DTI) 규제가 예상 외로 시장에서 잘 통하고 1년여 미적대던 기업들이 수조원을 내놓고 미소금융을 하겠다고 나서며 법인세 감면을 두고 시끄럽던 여당이 조용해진 게 지지율 덕이라고 판단해서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54% 정도였다. 10%대까지 떨어졌다 1년여 만에 취임 초 지지율을 회복한 거였다.

 설마, 과장(誇張)이겠거니 했다. 대통령에 대한 과도한 감정이입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원래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취임 후반기로 갈수록 내려가는 법 아닌가. ‘필연적 하락 법칙’, 또는 은행에 넣어둔 돈을 조금씩 꺼내 쓰듯 지지율이 내려간다는 의미의 ‘뱅크 어카운트 모델’이란 말이 있을 정도니 말이다. 하락 속도가 좀 빠르다고 혹 느리다고, 반등한다고 저리 정색할 일인가 싶었다.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고 할 일은 하겠다”는 태도가 정답 아닌가 여겨졌다.

 그로부터 3년여. 이명박 정부의 성쇠(盛衰)를 지켜보며 알게 됐다. 지지율, 중요했다. 청와대에서 여론조사 업무를 맡았던 인사는 이렇게 표현했다. “정책을 고치고 개혁한다는 건 누군가 피해를 본다는 거다. 기득권층의 일부를 공격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때 압박수단은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밖에 없다. 지지율이 낮으면 개혁은 고사하고 일상적인 것도 어려워진다.” 청와대 전 고위 관계자도 “지지율이 높으면 일하기 편하다”고 했다. 지지율이 곧 국정 추동력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한 달 국정 지지도가 40%대라고 한다. 초반치곤 낮은 수준이다. 여론조사 전문가가 “위기 상황”(이택수 리얼미터 대표)이라고 하니 더 그렇게 느껴진다. 청와대의 긴장감은 하지만 그리 높지 않은 듯하다. 한 청와대 인사는 “선거 때 지지율 1, 2%이면 수십만 표가 왔다갔다하는 거였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 일각에선 “기대감 낮게 출발하는 게 기대감 충족이란 면에서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사실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은 여당의 이반으로부터 실감하게 마련인데 새누리당은 아직 조용한 편이다. 공개적으론 지금도 ‘원박(元朴·원조 친박)’이니 ‘신박(新朴)’이니 경쟁하고 있다. “자리를 기대했던 인사들은 불만이 있고 자리에 기대가 없었던 인사는 걱정을 하고 있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쓴소리를 하면 청와대에 부담으로 주니, 그렇다고 세상에 나서서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도 없으니 차라리 입을 다물고 있다”(새누리당 인사)는 기류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지율이 계속 횡보한다면? 긴장해야 한다. 대놓고 바른말 한 박근혜계 인사에게 사적으로 “잘했다”는 성원이 답지한다지 않나.

 다시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는 참모의 얘기다. 그는 그 후 “정권 재창출을 하려면 대통령에게 책임감(responsibility)도 중요하지만 반응성(responsiveness)도 중요하다”는 취지의 내부 보고서를 썼다고 했다. 어쩌면 지금의 박 대통령에게도 요긴한 조언이겠다.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진 불통·독주·고집 등 문제점에 대한 공통의 처방은 나와 있는 터 아닌가. 박 대통령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고 정 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