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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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구정. 역시 설날이라는 명절 기분으로 들뜬다. 상가는 문을 닫고 때때옷이 골목에 넘치고 하여 신정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신정이 좀 서먹서먹한 겉치레로 그치는 형식상의 명절이라면 구정은 생활 속에서 우러나는 「설날」인 듯 한 것이 요즘의 형편이다.
그것은 다분히 절기와도 관련되는 것일 것이, 소한·대한 추위가 몰아 닥치는 동삼의 신정보다는 입춘 지나 봄기운이 완연한 속의 구정이 한결 마음을 화창하게 가꿀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오랜 민속의 타성이 10년 20년의 인위의 힘만으로는 어떻게도 할 수가 없다는 얘기로 생각한다면, 새삼 민중의 영위가 이루는 역사의 흐름이 지닌 줄기찬 「에너지」의 무한량을 절감케도 된다.
그런 가운데서도 설날 세시풍속이 날로 달라져 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갓 보기로 설날 아침에 존장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는 세배는 누구나 하는 일이지마는 제야에 송구의 뜻으로 문안드리는 「묵은 세배」는 차츰 자취를 잃고 있다. 이도 생활의 「템포」가 빨라지고 있는 소이일지 모르겠다.
세배는 예에 속하니 따분해서 그렇다 쳐도, 여자아이들이 색동옷에 귀여운 버선을 받쳐 신고 널뛰기하는 것이나 어린이 어른 할 것 없이 넓은 들판이나 냇가에 나서서 연을 띄우고 때로는 그것을 어르는 놀이를 볼 수 없게 된 것은 신정·구정을 가릴 것 없이 설날 풍경을 한결 허전한 것으로 하고 있다.
1년 3백64일은 땅을 굽어보며 산다고 하더라도 설날 하루만은 널판을 힘껏 굴러 멀리 중천에 솟을 듯 뛰어도 보고 또 무원한 하늘 그 푸르름 속에 연을 띄워 하늘만큼이나 가슴을 열어 보는 것도 가히 보람없는 일은 아닐 듯하여 구속에 한 가닥 애수와 같은 것을 느끼게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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