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면 서광 비친다는데 … 태양광, 다시 코드 꽂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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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권 기자]

‘솔라 좀비’와 함께 죽을 것인가, 태양을 향해 날 것인가 기로에 섰다.“

 국내 태양광 업계 한 관계자는 올해 초 한국의 관련 산업이 처한 현실을 이렇게 표현했다. ‘솔라 좀비’란 죽어야 하는데 죽지 않고 살아 있는 태양광 업체를 지칭한다. 정확히 말하면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싼값에 제품을 생산해 한국 등 다른 나라 동종 업체들을 힘겹게 해온 중국 태양광 회사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최근 한 달 새 글로벌 태양광 시장에 태풍이 휘몰아치며 상황이 급변했다. 유럽 쪽 태양광 강자였던 독일 보쉬가 사업 중단을 선언한 데 이어 세계 1위인 중국의 선텍마저 파산을 선언한 것. 이런 이유로 최근 몇 년간 ‘고난의 행군’을 해온 국내 태양광 업계는 전혀 새로운 상황을 맞았다. 선두주자격인 유럽·중국 태양광 메이저들마저 주저앉을 정도로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린 것 아니냐는 비관론과 그간 버거웠던 외국의 경쟁기업들이 사라진 만큼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는 낙관론이 교차하고 있다. 해석에 따라 최근 상황이 국내 관련 업계엔 ‘기회’이자 ‘위기’가 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조심스럽지만 낙관론에 무게를 둔다. 장기적으로 국내 업체들이 그간의 어려움을 딛고 경쟁력을 되찾을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2018년까지 중국 선텍에 폴리실리콘 4790억원어치를 납품키로 한 OCI는 계약이 해지될 경우 당장 타격을 받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만성적인 공급 과잉이 해소돼 경영이 정상 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OCI 관계자는 “정부 보조금으로 버텨온 중국 기업들이 본격 퇴출되면 시장 정상화가 앞당겨질 것”이라며 “실제 최근 주문이 늘어 공장을 정상 가동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이 회사의 공장 가동률은 50%를 넘지 못했다. 한화케미칼도 중국 메이저 업체의 좌초가 결과적으론 득이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한화는 셀과 모듈 분야에서 지난해 말 각각 세계 3위, 6위에 올라 있다. 모두 중국 업체가 1위를 다투는 분야다. 한화케미칼 관계자는 “현재 85~90%인 한화솔라원의 공장 가동률이 2분기 중으로 100%에 도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업계 전체로도 중국 업체들의 퇴출이 가속화하면서 태양광 발전의 원료인 폴리실리콘 가격이 모처럼 회복세로 돌아섰다. 지난해 말 ㎏당 13.5달러로 사상 최저로 떨어졌던 폴리실리콘 가격은 이달 들어 19달러대를 회복했다. 한국태양광산업협회 국자중 상근 부회장은 “원자력발전에는 10년, 화력발전도 수년이 걸리지만 태양광은 전기 생산까지 6개월밖에 걸리지 않는다”며 “중국 업체들의 치킨게임이 끝나는 시기만 견뎌내면 국내 업체들이 수확기를 맞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 부회장은 이어 “다만 국내 기업들이 회복기에 들어섰을 때 내수시장이 아닌 수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관련 업계의 태양광 매출 총액은 연간 총 6조원, 이 중 4조8000억원을 해외 시장에서 거둔다. 전체 매출 중 내수 비율은 20% 남짓이다. 국내 기업들은 여러 상황을 염두에 두고 서바이벌 전략을 다시 매만지고 있다. 현재 국내에는 삼성SDI·LG전자·현대중공업·한화케미칼 같은 대기업부터 OCI·SKC·신성쏠라·STX쏠라·롯데알미늄 등 모두 10여 개 업체가 태양광 산업에 뛰어든 상태다. 삼성·LG 같은 대기업은 자금력을 바탕으로 연구개발(R&D)에 매진하면서 ‘글로벌 구조조정 이후’를 대비하는 쪽이다.

 삼성전자는 중국이 장악한 결정계 대신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박막계로 사업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태양광은 크게 결정계와 박막계로 나뉜다. 태양광 발전소에 있는 집열판은 태양전지를 모듈화해서 만드는데 바둑판 같은 판을 이어 붙여 만드는 기술을 결정계라고 한다. 이에 비해 하나의 대형 판에 인쇄하듯이 태양광 집열 물질 레이어를 입히는 것을 박막계라고 한다. 박막계는 큰 집열판을 만드는 데 유리하고 공정이 단순한 장점이 있지만 균질하게 막을 입히기 어렵기 때문에 고도의 기술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삼성SDI 관계자는 “중국이 결정계에서 확고한 원가 경쟁력을 갖고 있어 삼성은 고도의 기술로 승부를 보는 박막계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화나 현대중공업처럼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분야 기술이 없는 기업들은 기업 인수합병(M&A)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다른 업체들이 신기술로 무장해 진출하기 전에 탄탄한 기술력을 보유한 중소기업을 인수해 먼저 뛰어든다는 복안이다. 한화가 지난해 독일의 큐셀을 인수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반면 위기의 진원지였던 중국의 태양광 산업은 당분간 움츠러들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2010년만 해도 자국 내 6개 태양광 기업에 ‘장기저리 융자’ 항목으로만 320억 달러(38조원)를 지원할 정도로 관련 산업을 밀어왔다. 하지만 자국 기업 과잉 보호라는 안팎의 따가운 지적에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부족 등을 이유로 지원금을 확 줄이는 방식의 구조조정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유럽 쪽 역시 역내 국가들이 크든 작든 금융위기를 겪고 있어 지원 축소, 태양광 수요 감소란 이중고에서 당분간 헤어나기 어려운 상황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신재생에너지과 김은하 사무관은 “유럽 국가들이 정부 지원 중단과 보조금으로 무장한 중국 업체들의 저가 대량 생산 시기가 맞물리면서 폴리실리콘부터 모듈·셀까지 태양광 위기가 심화됐다. 지난해만 해도 심할 땐 공급 과잉이 10기가와트 규모, 즉 원자력 발전소 10대 분량이 남아 돌았다”고 설명했다.

박태희·이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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