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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함의 최후 30분|우리는 이렇게 싸웠다 - 황중식 부장 수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56함의 최후를 지휘한 부장 황중식 소령은 기함에서 의식을 되찾자 사나이의 울음을 터뜨렸다.『살아남은 게 부끄럽다 』고-. 그가 지켜본 56함의 최후, 그리고 용감하던 승무원들의 최후를 그의 수기를 통해 공개한다.
이날 12시에 당직이 교대되었다. 당직사관은 전사한 포술관 이석무 중위와 홍대일 소위였다.
이보다 30분전에 장전항을 빠져 나온 적 PBL 두 척이 수원단 동쪽해상에서 맴돌고 있다는 경계사항도 인계되었다. 우리는 단성5발을 올리고 그곳에서 조업하던 어선을 남하시키기 시작했다.
하오 1시 10분쯤 우리는 53함에 지원요청을 하고 동해경비분대 사령에게 적함의 접근을 보고한 뒤 총원 전투배치를 명령했다. 적함이 쏜살같이 어선에 접근해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때가 하오 1시 40분. 우리 함은「직재그」로 운항하면서 휴전선 근방의 어선 10여척을 남하시키고 그 중 1척이 다시 빠져나가는 것을 막으려고 크게 좌회전할 찰나-「꽝」하는 폭음이 들려왔다.
이때의 56함 속도는 5「노트」, 정확한 시간은 하오 1시 55분. 적의 공격으로 판단한 우리는 선수를 1백80도 돌려 남동쪽을 향해 「직재그」로 운항하면서 어선들을 몰고 사격권에서 벗어나면서 3「인치」와 40「밀리」포로 응사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 번째의 큰 폭음이 선미에서 작렬했다. 배의 방향을 자동 조타하는 후미타기실에 첫 명중탄이 맞은 것이다.
타기실에 물이 들어오고 「모터」가 멎어버렸다.
「레이더」로 조종할 수 없게 되자 곧 김장옥 소위가 인솔하는 조타요원 5명이 조타실에 뛰어가 인력조타를 실시, 약1천「야드」를 남하했다. 이때 또 하나의 명중탄이 타기실 옆에 있는 후미기관실에 터지고 말았다. 기관당직 김만춘 상사 등 수명이 중상으로 쓰러졌다. 곧 방수작업에 뛰어간 보수반장 주영응 소위 등 9명으로부터 『치명타,「개스」와 침수로 보수불가능』이란 보고가 올라왔다.
뚫어진 선체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물을 「매트」로 막던 보수반의 박효삼 하사가 전사했다. 2∼3분후 「절망」이란 마지막 보고를 보낸 뒤 영영 소식이 끊어졌다. 정말 눈 깜짝 할 사이, 또 하나의 명중탄이 56함 31포에 작렬, 계속 적 해안에 포를 갈기던 장포장 이상호 상사롤 비롯한 김흥태 하사·임승철·박현규 병장 등 4, 5명을 날려버렸다.
네 번째의 명중탄이 전부 기관실을 터치고 말았다. 채팔규 대위(중상)와 김경규 중사(전사) 의 8∼9명이 쓰러졌다. 뛰어간 보수반이 다시 보고해 왔다. 『침수 심함. 보수불가능!』
우리는 『육상포대와 교전중』이란 위급 전보를 발했다. 그 때 또 하나의 직격탄이 통신실을 마비시켰다.
작전관 박태만 중위가 전사하고 김원태 중사가 중상으로 쓰러졌다. 이때 포술관은 『남은 실탄을 모두 발사하라』는 명령, 함장은 『총원 퇴함 준비』령을 내렸다. 2시 25분, 함장을 다시 『최후까지 침착하라. 우리는 결코 지지 않을 것이다I』 그 찰나 또 하나의 섬광이 「브리지」에서 번쩍했다. 나와 함께 있던 함장이 쓰려지고 함장의 오른편 눈 밑에서 굵은 핏줄이 흘러 내렸다. 함장은 다시 일어나면서『계속 지휘하라』고 나에게 명령했고 나는 함장의 부상을 알리지 않은 채 그대로 지휘했다. 함장이 다시 일어나 갑판으로 내려서는 순간 사닥다리에 또 포탄이 터져 함장은 다시 넘어졌고 부러진 「마스트」가 머리 위에서 폭우처럼 쏟아져 내렸다. 2시31분 배는 45도나 기울어 있었고 나는 약2분 가량 정신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함상에는 연기와 불길이 충천한 아수라장, 나는 기밀문서와 기기파기를 명령했다. 소란 속에서도 김영식 중사는 기밀문서를 침전대에 넣어 바다에 던졌고 정완섭 병장은 주요서류를 품에 숨겼다. 33분께 『총원 퇴함』-오른편 갑판이 불 위에 닿을 정도로 배는 기울어졌다.
배 옆구리에 올라선 김경식 하사는 수기신호로 달려오는 71함에 56함의 최후를 알릴 때 좌현에 걸려있던 단정을 내리려 기어오르던 갑판하사가 파편을 맞고 물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떨어졌다. 이 수라장 속에서도 의식을 되찾은 함장은 배를 한바퀴 돌면서 쓰러져 있는 승무원 7,8명을 퇴함 시키고 자기의 「자키트」를 벗어 부상자에게 덧입혀 주었다.
마지막으로 갑판의 반 이상이 물이 찼을 때 함장과 내가 확인한 갑판 위의 전사자만도 12명. 이젠 이 비극의 56함에는 살아남은 전우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평소 그렇게도 심한 기합과 나무람을 받던 그들이 어쩌면 그렇게도 용감할 수 있었을까- 살아남음이 오히려 외로운 명상에 누워 앞서간 전우들의 명복을 빈다. <문책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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