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탐색 겉핥기 교실 수업보다 인성·사회성 길러줄 체험 원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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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박근혜 정부가 추진 중인 중학교 자유학기제와 관련해 학생들은 직업탐색에 그치기보다는 인성·사회성 등을 키우는 기회가 되길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들은 또 이 기간에 시험 축소 같은 상징적 조치보다는 토론·체험·실습 중심의 수업 등 근본적 변화가 생기기를 더 열망했다.

 중앙일보가 한국교육개발원(원장 백순근)과 공동으로 중학생 31명을 모아 지난 9일 서울 중앙우체국빌딩 국제회의실에서 집담회(集談會)를 열고 의견을 분석한 결과다. 참석 학생들은 서울시교육청이 올해 처음 도입하는 ‘중1 진로탐색집중학년제’ 시범학교 10곳의 1∼3학년들이다. 진로탐색집중학년제는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의 핵심정책으로 박 대통령의 자유학기제와 유사한 개념이다. 정부는 시·도별 단계적 도입을 거쳐 2016년 자유학기제를 전면 실시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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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은 자유학기제 도입에 대체로 공감했다. “학교에선 학업경쟁만 이뤄지고 있다”며 입시 위주 교육을 문제로 여기고 있었다. 학생들은 자유학기제를 계기로 주입식 교과 수업이 바뀌길 희망했다.

 “국어·영어·수학도 토론·실습·체험을 활용하면 흥미가 생길 것 아니에요. 수업에서 자기 꿈을 찾으면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3학년 여학생) 하지만 “선생님들이 수업 방식을 바꿔야 흥미가 살아나는데, 선생님들이 열심히 연구해 주실지 의문”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집담회 직후 이뤄진 설문조사에서도 자유학기제가 “활동중심 수업 등을 통해 인성·사회성·자기주도학습능력 등을 함양하는 교육이 돼야 한다”는 학생이 60%를 차지했다. “직업체험 중심의 진로직업교육이 자유학기제에 적합하다”는 학생은 6.7%에 그쳤다. 나머지(33.3%)는 혼합 형태를 희망했다.

 자유학기제 도입으로 가장 바뀌길 기대하는 것은 ‘토론·실습·체험 등 수업방법의 변화’와 ‘동아리 활동 활성화’(각각 34.5%) 같은 학교 현장의 변화였다. 학습주체인 학생들의 자발성을 살린 동아리와 자유학기제 운영을 연계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현재의 진로체험이 학급 혹은 학교 단위로 이뤄지면서 개별 학생들의 적성을 살려내지 못한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학교에서 진로 특강을 마련하면 의사·변호사처럼 돈 많이 버는 직업 가진 분들만 와요. 그런 직업을 꿈꾸지 않은 학생들은 흥미를 가질 수 없지요.”(2학년 여학생)

 “학교 진로체험이라는 게 외부에서 강사가 오셔서 교내 방송하는 것이었어요. 애들이 흥미가 없으니 집중 안 하고 떠들어요. 더 문제인 건 그런 방송만 들어도 봉사시간으로 인정해줘요.”(3학년 남학생)

 학생들은 “진로를 찾는 과정은 한 학기보다 긴 기간 동안 이뤄져야 한다” “학생 개개인에 맞춘 정기적인 진로상담이 필요하다”는 주문도 했다.

 자유학기제에선 진로체험이 내실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 2학년 여학생은 “지난해 우리 학교에서 1학년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진로체험이 네 가지밖에 안 됐었다”며 “자유학기제에서도 수박 겉핥기처럼 살짝 체험하는 식으로 진행될까 봐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자유학기제 시행 학기로는 2학년 1학기를 꼽은 학생(38.5%)이 가장 많았다. 1학년 2학기(19.2%)나 1학년 1학기(23.1%)를 택한 학생은 그 절반 수준이었다. 교사 등 전문가들이 자유학기제 적합 시기로 1학년을 주로 염두에 두고 있는 것과는 다른 결과다. 2학년 시행을 선호한 학생들은 “1학년은 중학교 적응기, 3학년은 고교 진학 준비기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집담회를 지켜본 백순근 교육개발원장은 “학습주체인 학생들이 전문가들보다도 우리 교육의 문제점과 해법을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다”며 “자유학기제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충실히 반영해야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시윤·천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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