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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래도, 돌직구 원조는 오승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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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프로야구에서 가장 빠르고 강한 공은 오승환(삼성)이 던지는 ‘돌직구’다. 오승환이 지난 2일 WBC 1라운드 네덜란드전에서 힘찬 돌직구를 뿌리고 있다. [중앙포토]

돌직구. 혹시 몇 년 뒤에는 국어사전에도 등재되지 않을까. 2013년을 사는 사람들은 돌직구의 의미를 알고 있다.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사안의 핵심을 언급한다는 뜻이다.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거의 매일 돌직구라는 표현을 쓴다. 시사·정치에도 자주 쓰인다. 서규용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최근 『돌직구 장관 서규용 이야기』를 출간했다. JTBC 시사프로그램 이름도 ‘표창원의 시사 돌직구’다.

 돌직구의 어원은 프로야구 최고의 마무리 투수 오승환(31·삼성)이 던지는 강력한 직구다. 그의 공을 상대한 타자들은 “공이 아니라 돌을 때리는 것 같다”며 고개를 젓는다. 2006년 데뷔할 때부터 2013년 시범경기까지 오승환의 돌직구는 난공불락이다. 30일 개막하는 2013 정규시즌에서 가장 주목받는 투수는 역시 오승환이다.

 ◆돌직구를 던지는 돌부처

대구구장에서 만난 오승환은 “정말 돌직구라는 말이 나 때문에 나온 건가”라며 딱딱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돌부처’란 그의 별명은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오승환은 “나도 TV에서 말하는 돌직구의 의미를 알고 있다. 하지만 내 앞에서 돌직구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친구들이 TV에서 네 얘기(돌직구) 나왔다’고 하는데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야구가 대중화한 건 좋은 것”이라며 살짝 웃었다.

 오승환은 이달 초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도 돌직구를 뿌렸다. 한국이 치른 3경기에서 모두 등판해 2와3분의2 이닝 동안 무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했다. 아웃카운트 8개 중 6개가 삼진이었다. 그의 돌직구를 때려낸 타자는 없었고, 변화구만 겨우 건드렸다. 한국이 1라운드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미국과 일본 구단의 스카우트들은 오승환을 더 보지 못해 아쉬워했다. 그는 2006년 WBC 결선라운드 미국전에서 세이브를 거둔 뒤 메이저리그 타자들로부터 “170㎞의 공을 던지는 것 같다”는 찬사를 받은 바 있다.

 송재우 JTBC 해설위원은 “오승환이 정말 몸을 잘 만들었더라. 한국이 준결승·결승까지 갔다면 오승환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오승환은 “2006년에는 정말 정신 없이 던졌다. 그때보다 시야가 조금 넓어졌으니 이번에 미국까지 갔다면 다른 기분으로 던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대표팀 성적이 나빠) 팬들께 정말 죄송하다”고 말했다.

 오승환은 2013년을 마치면 국내 이적이 자유로운 8년 프리에이전트(FA)가 된다. 구단 동의를 얻으면 해외 진출이 가능하다. 그는 “아직 해외 진출에 대해 얘기할 때가 아니다”라면서도 “기회가 된다면 임창용(시카고 컵스) 선배처럼 일본과 미국에서 던져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털어놨다.

 돌직구를 던지는 돌부처이지만 만 두 살이 된 조카 다란 앞에서는 맘껏 웃는다. 그는 “다란이는 둘째 형(오형석씨)의 딸이다. 삼형제 집안에서 첫 조카가 귀여운 딸이다. 너무 예뻐 죽겠다. 다란이가 야구장에 올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했다. 오승환이 가장 난감해 하는 질문을 하려는 순간, 그가 말을 막는다. “조카가 정말 예쁘다. 결혼 얘긴 안 하셔도 된다.”

 ◆선수들의, 청소년들의 롤모델

오승환의 현재를 만든 건, 과거의 땀과 인내다. 단국대 신입생이던 2002년 오른 팔꿈치 수술을 받은 그는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지루하게 이어지는 재활 훈련을 묵묵히 소화했다. 지금도 오승환은 매일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

 WBC 대표팀에 합류했던 김현규 삼성 트레이너는 “대표팀 선수들도 오승환을 보고 놀라더라. 훈련량과 집중력 모두 최고”라고 전했다. 오승환은 “크게 아파 본 사람들은 안다. 오늘 하루 게으르면 며칠 고생한다. 후배들이 ‘어떻게 하면 선배처럼 몸을 만들 수 있나’라고 묻기도 하는데 해줄 말은 별로 없다. 그냥 ‘확실하고 꾸준하게, 올바른 자세로 훈련하라’고만 한다”고 말했다.

 오승환은 명확한 훈련 철학을 갖고 있다. “캐치볼을 할 때도 전력을 쏟는다. 대충하면 경기 때 흐트러질 수 있으니까. 늘 실전처럼 훈련한다.” 우직한 듯한 그의 말에서 교훈을 얻은 사람이 있다. 오승환의 한 팬이 얼마전 편지를 보내왔다. ‘시험을 볼 때마다 떨어서 결과가 안 좋았다. 그러던 중 오승환 형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공부를 할 때도 시험 보는 것처럼 해봤다. 그랬더니 결과가 달라졌다. 정말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오승환은 “그분이 원하던 대학에 진학했다고 하더라”며 뿌듯해 했다.

 오승환은 지난 19일 경산에서 열린 ‘드림캠프’에서 유소년 야구팬, 다문화가정 어린이들과 만났다. 삼성 스포츠단 소속 12개 팀이 한 달씩 참가하는 프로그램에서 오승환이 가장 먼저 ‘일일 멘토’로 나섰다. 그는 “나도 청소년기에 고민이 많았고, 아파도 봤다. 두 형들이 내 고민을 들어줬고 어려움을 극복해냈다”면서 “내가 프로선수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경기장 안팎에서 성실히 사는 사람, 유소년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형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긴 인터뷰를 마치자 그의 움직임이 다시 바빠졌다. 오승환은 자리를 툭 털고 다시 훈련을 하러 들어갔다.

하남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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