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공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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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선거바람은 공천싸움이란 「정치열병」을 몰고 왔다. 날마다 공천 받는 꿈을 꾼다느니 공천 못 받으면 자살할 수 밖에 없다고 얘기할 만큼 숱한 정객들의 마음과 몸이 공천열로 달아오르고 있다.
보다 높은 권력의 줄타기, 상대방 경쟁자를 넘어뜨리기 위한 온갖 권모술수의 공격과 방어- 이런 「정치홍역」을 겪고 다시 치열한 득표 싸움에서 이겨야만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언제부턴가 정치인이 걸어야 할 행로처럼 돼버렸다. 더구나 조직·자금면에서 든든한 여당 안의 공천 다툼은 단순한 잡음이 아니라 정치생명을 선거보다 한 발 앞서 가름하는 「정치결전」같은 양상.
○…공화당 안의 치열한 공천 경합구로 아직 결말이 안 난 곳은 30여 개로 꼽히고 있다.당초 원내 대 원내 4, 원내 대 원외 31, 원외 대 원외 20 등 또 55개 구의 경합상을 보였으나 지난 연말부터 본격적인 조정작업으로 현재는 원내 대 원외 21, 원외끼리의 경합 15 등 36개로 압축되었다는 것.
그러나 경합구 수효가 표면적으로 줄어드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 내면의 싸움은 더 치열해져 갖가지 시끄러운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일부 지구당에서의 위원장 불신임 사태, 중상모략 등의 인신공격 그리고 공무원까지 동원한 공천싸움은 오히려 여·야 대결의 선거전보다 더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지난 연말 전남 X구에서 공화당의 공천싸움에 말려든 60여명의 이장들이 일괄 사퇴하는 소동이 일어났다. 이것은 공천 경쟁에 나선 K씨를 지지하는 이장들과 Y씨를 미는 읍장 B씨의 충돌에서 빚어진 것.
당초 K씨는 각 기관에 책상 등 기물을 사 주는 등 읍장 B씨와의 유대를 맺었었으나 최근 읍장이 Y씨에게로 전향하자 65명의 이장들에게 주연을 베풀어 읍장을 배척하는 일괄 사퇴를 시켰고 이 때문에 말단 행정기능이 마비 됐었다는 것이다.
전북 Y지구서는 K의원이 공천경쟁자인 Q씨 계로 알려진 2개 면장을 해임시켜 말썽 됐었고, 전북 M지구에선 R의원이 지구당 사무국장 A씨가 경합자인 K씨와 국민학교 동창이며 자주 만난다는 이유로 갈아치우려다 중앙당의 반대로 안 되었다는 실패담도 있고‥ 대부분의 경합구에선 으례 나오는 것처럼 된 불신임 서명 이외에도 금력 또는 정치적·법률적 압력, 위협이 있는가하면 이권과의 「바터」 또는 요직 알선에 의한 후퇴 종용 등 차원 높은 수법도 있다.
원내 대 원외 경합의 대표적 예로 불리는 강원도 모 지구의 경우 J의원이 C씨에게 2천만원의 은행 융자와 1천만원 상당의 이권을 주겠으니 물러서라고 종용했으나 C씨의 거절로 조정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가 사실은 어떻든 파다하다.
○…선거가 임박하면 여·야간에 정례행사와 같은 공천 모략전의 한 수단- 즉 고소전이 그것이다. 물론 고소인은 공천경합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을 시켜 경쟁자를 고소하여 골탕을 먹이는 법인데 어떤 것은 고소 가치가 있는 것도 있고 또 무고에 가까운 것도 있게 마련이다.
현재 이 굴레를 쓰고 고민하고 있는 사람은 경기도와 충남의 현역 국회의원 2명이다. 이들은 제나름대로 상대방이 시킨 터무니없는 모략이라고 발뺌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보이지 않는 압력인 것이 틀림없다.
이상과 같은 경우는 상대방을 깔아뭉개는 수법이나 이와는 반대로 『아무개는 모 부의 차관으로 내정됐대.』라는 식으로 나무 위에 올려놓고 흔들어 대는 작전도 있다. 전남 K지구 K씨와 R씨가 이렇게 다투다가 나중에는 프라이버시까지 건드려 요란했었다는 소문이다.
○…공천싸움에 뛰어든 인사는 공화당쪽 5백, 야당쪽 2백, 모두 7백여명으로 추산. 경합이 이렇게 치열한데는 무소속의 출마가 허용되지 않는 정당법상의 표면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것은 권력욕에 대한 무분별한 집념 때문으로 보는 측이 많다.
공천에 떨어지면 자살할 도리밖에 없다고 진지(?)한 태도로 임하는 인사가 있는가 하면 돈이나 먹고 떨어지자는 속셈으로 덤비는 「브로커」식 건달까지 끼어있다니 여하간 공천은 골칫거리… <윤기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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