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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와 스티븐 킹이 만났다면 도대체 무슨 대화를 나눌까?

중앙일보

입력

비록 에드거 앨런 포는 살아 생전 사촌누이 버지니아 클렘과의 비극적인 결혼생활, 알코올 중독에 의한 발작 등으로 불운을 겪을 수밖에 없었지만, 죽은 뒤 그의 문학은 20세기인들, 특히 글을 쓰면서 살아가는 인간들이 한 평생 먹고 살 만한 토대를 마련했다. 한 알의 밀알이 썩지 않으면 한 알이 남지만,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한 요한복음의 말을 떠올리게 하는 얘기다. 천재란 이처럼 큰 나무와 같아서 다른 많은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그늘을 만들어준다.

20세기 문학산업의 아버지, 에드거 앨런 포
프랑스의 프랑수아 레이몽이 초를 잡았다가 끝을 보지 못하고 죽은 뒤, 다니엘 콩페르가 책으로 완성시킨 『환상문학의 거장들』(고봉만 외 옮김, 자음과모음)은 에드거 앨런 포가 문을 연 환상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들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사전식으로 서술한 책이다. 이 책이 에드거 앨런 포 항목으로 시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투르게네프, 도스토예프스키, 디킨즈, 스티븐슨, 모파상을 거치는 것은 환상문학이 당대의 새로운 소설 경향이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 책의 작가 선정에 따르면 19세기에만 해도 대중소설과 본격소설의 경계를 두지 않고 존재했던 환상성은 코난 도일, H.P. 러브크래프트, 가스통 르루, 브램 스토커 등 대중 환상문학의 거장들이 등장하면서 본격소설에서 떨어져나와 하나의 장르로 정착했다. 여기에 20세기 문학의 가장 위대한 선구자였던 카프카와 보르헤스가 등장하면서 결정적으로 대중소설과 본격소설의 환상적 요소는 분리됐다.

하지만 『환상문학의 거장들』은 본격/대중의 구분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소설에 환상성을 도입한 코난 도일, 카프카, 보르헤스, 스티븐 킹 등과 같은 현대의 거장들을 동등한 차원에서 탐색한다. 이 때문에 판타지 작가에 대한 참고자료를 얻으려는 사람들에게는 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반지의 제왕』을 쓴 대표적인 판타지 작가 톨킨 항목은 없는 반면 알랭 로브-그리예, 미르치아 엘리아데, 버지니아 울프처럼 환상문학에 포함된다는 사실에 약간 의아심을 느끼게 하는 작가들은 포함됐다.

이런 혼란은 환상문학에 대한 경직된 범주에서 벗어나 연대기적 서술을 하겠노라는 글쓴이들의 서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서문을 쓴 다니엘 콩페르는 “환상문학은 또한 이 장르에 속하는 전문작가들의 것만으로 축소될 수 없다”며 러브크래프트와 카프카 등을 동시에 다룬 까닭은 이들이 모두 “고전적이든 현대적이든, 확고하든 주변적이든 간에, 일시적으로 또는 지속적으로 환상의 차원에 머물렀던 작가들”이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이 책은 각 작가들의 생애, 작품세계, 예술적 혁신, 장르 내에서의 영향관계를 따지는 짧은 작가론 외에도 환상문학의 전통적인 주제들, 환상과 분신, 세기말과 세기초의 경향들, 흡혈귀 주제 등 환상문학 용어에 대한 주제어 설명도 덧붙였다. 이 주제어들은 환상문학의 전통 내에서 각 주제가 어떻게 전승, 발전해왔는가를 밝히는데 주력한다. 안타까운 점은 이 책에 소개된 작가들이 매우 우아한 환상문학을 전개했던 사람들임에도 대부분의 작가들의 작품을 국내에서는 읽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환상문학은 자신을 어떻게 혁신해왔는가?
아마도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판타지 소설 붐이 아니었더라면 『환상문학의 거장들』은 출간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환상문학의 거장들』은 국내의 판타지 소설이 좀더 세련돼야할 필요성이 있음을 지적한다. 먼저 판타지의 어의를 생각해볼 문제인데, 이 책과 마찬가지로 외국에서 판타지라 하면 늘 스티븐 킹의 공포소설이 빠지지 않는 점에는 주목해야 한다. 외국에서는 판타지를 현실과 상상 사이의 미묘한 틈새를 파고드는 요소로 보기 때문이다. 카프카에서 스티븐 킹까지 판타지의 외연이 얼마나 넓은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김연수/ 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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