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대통령, 중국어 독학했다고 하더니…"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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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민과 나의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 박근혜 대통령.”(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짜이젠(再見·또 만납시다).”(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일 청와대 집무실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전화통화를 했다. 한·중 수교 20년 만에 양국 정상 간에 처음 이뤄진 취임 축하통화였다. 청와대 관계자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중국 측에 박 대통령과 시 주석 간의 통화를 제안했는데 중국 외교부장이 직접 ‘좋다’고 답변하면서 바로 일정을 잡자고 해 이틀 만에 통화가 성사됐다. 중국이 박 대통령에게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중국 챙기기는 연원이 깊다. 2005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 베이징을 방문한 박 대통령은 1992년 한·중 수교 실무를 맡았던 중국 관리 전원을 초청해 서울에서 준비해간 스웨터를 선물했다고 당시 수행했던 구상찬 전 의원은 전한다. 이어 상하이(上海) 임시정부의 마지막 거점이었던 충칭(重慶)에서도 황전둥(黃鎭洞) 당시 충칭시 당서기에게 감사패를 전달해 “마음 씀이 깊다”는 찬탄을 받았다.

이런 모습들은 향후 전개될 박 대통령의 외교스타일을 예고한다. 여성 대통령 특유의 섬세한 배려를 통해 상대방 마음을 열고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원칙으로 신뢰를 쌓아 ‘윈-윈’한다는 구조다. “국내 정치에서 박 대통령이 가장 중시하는 ‘원칙’과 ‘신뢰’가 외교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설명했다.

개발도상국 대사들과 만남 중시
박 대통령이 지난 14일 중남미·아프리카 19개국 대사들을 단체로 접견한 건 ‘신뢰 외교’의 전형을 보여준다. 당시 접견은 박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말 서울에 주재하는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대사들을 잇따라 만난 게 계기가 됐다. 이 소식을 들은 중남미·아프리카 대사들이 “4강 대사들처럼 우리도 당선인을 뵙고 싶다. 바쁘실 테니 한꺼번에 찾아가면 어떻겠느냐”고 요청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승낙 의사를 밝혔지만 일정이 바빠 지난달 25일 대통령 취임식 이후에도 이들을 만나지 못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이달 초 주철기 수석에게 “만남을 약속했으니 곧 일정을 잡으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접견장에 온 19명 대사 전원에게 발언 기회를 주고, 발언자와 눈을 맞춰가면서 일일이 답변해줘 40분으로 예정된 접견이 80분으로 늘어났다. 역대 대통령이 통상 외국사절단을 만나는 자리에선 사절단 대표 등 몇 사람과만 얘기하고 접견을 마쳤던 것과 대조적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접견 국가 정보를 미리 말씀자료로 올렸는데 대통령은 ‘그 나라엔 우리 한전이 들어가 있죠?’라는 식으로 새로운 정보를 추가해 얘기를 나누더라”고 놀라움을 표했다. 주철기 수석도 “대통령은 문서를 금방 이해하고 메모리(기억)하는 능력도 뛰어나 외교 실무자들을 편안하게 일하게 해준다”고 전했다.

며칠 뒤 박 대통령은 외교안보수석실에 다시 지시를 내렸다. “그때 만난 대사들에게 약속했던 내용을 외교부 등 해당 부처들이 잘 처리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반드시 실행되게끔 하라”는 내용이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외교사절과의 대화는 그냥 지나가는 인사말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은데 박 대통령은 약속한 건 반드시 지켜야 신뢰 외교가 가능하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대규모 외교단 접견은 이르면 다음 달 초 유럽과 중앙아시아 국가 대사들과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박 대통령은 “이들과도 당선인 시절에 접견을 약속했으니 일정을 잡아야 한다”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남다른 외국어 실력도 ‘박근혜 외교’의 중요한 자원이다. 박 대통령은 14일 중남미·아프리카 대사들을 만나면서 스페인어·포르투갈어·프랑스어로 인사말을 했다. 20일 시진핑 주석과 통화를 끝낼 때도 중국어로 작별 인사를 했다. 박 대통령은 영어와 중국어·프랑스어·스페인어 등 4개 외국어를 할 줄 알며, 해당 언어 사용국 인사들을 만날 때 이를 적극 활용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는 남다른 수준이어서 통역이 말하기 전에 내용을 이해하고 손짓 등으로 반응을 하더라. 중국어도 독학을 한 것으로 들었는데 상당한 수준이다. 중국의 석학 펑유란(馮友蘭)이 지은 『중국철학사』를 비롯해 중국 관련 서적을 여러 권 읽어 중국에 대한 이해가 깊다”고 전했다.

‘대북 액션플랜 안보인다’ 지적도
박 대통령의 첫 해외방문지는 5월 초 미국으로 정해졌다. 박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이렇다 할 개인적 인연은 없다. 다만 박 대통령은 2005년과 2007년 미국을 방문해 콘돌리자 라이스 당시 국무장관 등 고위급 인사들을 만났다. 그때 박 대통령을 접한 미 국무부 관리들 가운데 박 대통령 팬이 많이 생겼다고 당시 주미 대사관에서 근무한 관계자는 전했다. 그는 “박 대통령은 누군가를 비판하는 말도 아주 부드럽게 하고 관련된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지 않도록 얘기하는 배려가 뛰어났다”며 “미 국무부 관리들은 ‘박 의원(당시)에게 대통령다운 기품이 느껴진다(presidential)’고 평가하더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이런 화법은 오바마 대통령의 스타일과도 잘 맞는 만큼 두 정상이 인간적으로 친근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각에선 박 대통령 취임 직후 미국에 앞서 중국을 먼저 방문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돌았지만 결국은 전임자들처럼 미국을 첫 방문지로 선택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주변 4강에 대해 순위를 매기지 않고 모든 나라가 중요하다고 보며, 균형 잡힌 시각을 갖고 있다고 주철기 수석은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첫 방문지로 미국을 택했지만 당선 직후 가장 먼저 특사를 보낸 나라는 중국이고, 오바마 대통령에 이어 시진핑 주석과도 취임 축하통화를 했다.

정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미국과는 한·미 동맹 60주년을 계기로 21세기형 ‘포괄적 전략동맹’을 구축하고 중국과는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내실화하는 한편 일본과는 영토·과거사 문제는 단호히 대응하되 호혜적 협력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임자들과 다른 박 대통령의 특징은 제3세계 국가에 대해 관심이 많은 점이다. 박 대통령은 이들 국가가 우리 중소기업의 ‘블루오션’이란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 때 외교무대에서 남북 대결을 펼쳤던 시절 아프리카·중남미·아시아 정상들을 자주 초청한 것도 한몫했다고 보여진다. 당시 이들을 맞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박 대통령이 자연스레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쌓게 됐으리란 분석이다.

문제는 대북정책이다. 박 대통령은 “안보에는 철저하되 대화를 통해 신뢰를 구축해간다”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총론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북한의 3차 핵실험과 대남 도발 위협 등으로 구체적인 액션플랜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실무 부처에선 북한과의 물밑 대화를 통한 협상 재개 방안을 보고했지만 청와대 측은 “섣불리 나서면 곤란해질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이 자꾸 상황을 악화시키는 바람에 우리가 지금 움직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단 대북제재는 유엔 차원에서 진행하되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설 경우 식량·의약품 같은 인도적 지원부터 단계적으로 실시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강찬호 기자 stonco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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