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서양이 전쟁에서 이기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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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과 영국이 얻은 승리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전쟁 기질 덕분이다.

빈 라덴에게 : 그리스인들을 원망하라! 지금 진행되고 있는 아프간 전쟁사를 쓰게 될 때, 한 가지 의문이 분명히 역사가들의 흥미를 끌 것이다. 12만명의 구소련군은 아프간에서 10년 동안 전쟁을 했지만 승리하지 못했다. 그러나 비교적 적은 수의 서구 군인들은 단 몇 주만에 소수의 사상자만 내고 탈레반과 오사마 빈 라덴에게서 아프간을 접수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몇 가지 답이 떠오른다. 막강한 공중 화력, 탈레반의 무자비한 지배에 환멸을 느낀 아프간인들의 마음을 이용해 아프간내 무장 세력들과 맺은 동맹. 그러나 9·11 참사 한 달 전 출판된 빅터 데이비드 핸슨의 신작 '살육과 문명(더블데이·4백92쪽)'은 더 근본적인 이유를 제시한다. 서양인들이 2천8백 년 전 그리스 계곡들에서 익히기 시작한 신속 섬멸 전술이 바로 그것이다.

프레즈노에 있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고전학 교수 핸슨은 1989년에 쓴 자신의 저작 '서양의 전쟁 방식 : 고대 그리스의 보병 전투'에서 먼저 서양 군대의 역학을 분석한다. 그는 서양 군대의 기질은 서로 간의 전쟁이 끊이지 않던 그리스 도시국가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서로 약속한 전쟁터에서 만나 결말이 날 때까지 싸웠고 한쪽이 무너지기 전에는 물러서지 않았다. 이는 전쟁의 주요 목적이 '속전속결'이라는 사고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말해준다.

'서양 세력의 부상과 기념비적 전투들'이라는 부제가 달린 핸슨의 최근 저작은 이 '맹렬한 정면 공격의 이념'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그 행적을 쫓는다. 그의 연구는 그리스가 페르시아 함대를 격파한 살라미스 해전(기원전 4백80년)에서부터 베트콩의 1968년 구정(舊正) 공세에 대한 미국의 승리(엄밀히 말하면 군사적 승리다. 저자는 정치적 패배를 인정한다.)에까지 이른다.

주로 전쟁 결과에 실질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자영농 창보병들로 구성된 고대 그리스의 중갑밀집대형(phalanx·방진)이 유럽 군사력의 주요 특징인 보병부대의 기반이다. 푸아티에 전투(732년)에서 방진의 최근 형태인 프랑크 보병부대는 두려운 존재였던 이슬람 기병부대를 대파했다. 핸슨은 "프랭크족의 승리는 뛰어난 중무장 보병대가 횡렬 대형을 유지하고 방어가 가능한 지점을 확보할 경우 뛰어난 기병대를 격파한다는 것을 확인시켜줬다."고 말했다.

화기가 도입됐을 때 유럽은 다른 문명보다 훨씬 쉽게 창보병 대열을 총을 든 치명적인 보병부대로 바꿀 수 있었다. 그들은 횡렬 대형으로 어깨를 맞대고 질서정연하게 명령에 따라 창으로 찔렀던 것과 같은 형태로 사격을 했다. 서양 군대의 눈부신 전적은 여기서 시작됐다. 에르난 꼬르떼스는 1천6백 명으로 1519년부터 1521년까지 1백만 명이 넘는 아즈텍인(멕시코 중부를 지배했던 종족)을 학살했다. 1571년에 기독교 연합군 함대는 그리스 레판토에서 자신보다 규모가 컸던 오스만 터키 제국의 이슬람 함대에 압승을 거뒀다. 영국이 4개의 대륙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할 당시인 1879년에 영국 육군 병력은 18만 명에 불과했다.

핸슨에 따르면 서양은 이 시기에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경제 체제, 물질과 기술 진보를 가능하게 한 합리주의 전통,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정치 구조, 윤리 체제, 인간의 장점을 이끌어 내는 종교를 홀로 발전시키고 있었다.

이 글에서 한 서양인의 우월주의 냄새가 너무 많이 난다면, 그 이유는 개인의 용감함과 전략적 재능은 서양의 전유물이라는 저자의 믿음을 독자들에게 성급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 글은 문명과 역사가 서양인들로 하여금 살육장에서 더 능숙하도록 만들었음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핸슨은 그리스에서 유래한 윤리 관념을 가진 서양인들이 어떤 때에 살기 띤 분노를 일으키는지 지적한다. "우리 서양인들은 테러와 기습 공격을 받아 우리가 당한 작은 희생을 놓고 적이 '비겁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가한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공격은 끔찍한 손실을 입히더라도 이를 '공정하다'고 한다." 오사마 빈 라덴(혹은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활용할 수도 있었을 대목이다.

역사를 광대한 화폭에 담아 조망한 핸슨의 저작은 인상적이다. 그러나 그의 분석은 그가 미래를 고찰할 때 설득력이 떨어진다. 핸슨은 "오늘 날 막강한 서양 군대는 자신 외에는 두려워할 무력 집단이 없다."라고 밝힌다. 그리고 결론을 내린다. "서양은 중동 등의 비서양 지역의 도발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서양 군대 간에 일어나는 전쟁을 조심해야 한다."

그러면 다른 서양 국가와 싸울 가능성이 있는 서양 국가는 어디일까? 핸슨은 미국과 유럽을 지목한다. 그는 "유럽 국가들로 구성될 범유럽 국가의 미국에 대한 집단적 적개심과 질투"라고 전망했다.

ANTHONY PAU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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