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알고 보면 명랑한, 신경숙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신경숙

작가의 변신이 늘 즐거움을 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엄마를 부탁해』로 세계적 주목을 받은 신경숙(50)의 시도는 유쾌하다. 그의 새 소설집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문학동네) 얘기다. 특유의 내밀하고 밀도 깊은 문체를 내려놓은 자리에는 유머가 빛난다.

 책장을 넘기며 킥킥대고 웃다 보면, 그에게 이런 재주가 있었나 싶을 정도다. 예컨대 치과에서 벌어진 할머니들의 대화를 중계한 ‘사랑스러운 할머니들’이 그렇다. 배꼽을 잡을 수밖에 없다.

 예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예수가 누구꼬?”라는 물음에 한 할머니가 “우리 며늘애가 자꼬 아부지, 아부지, 해쌌는 거 보이 우리 사돈영감 아닌가 싶네”라고 대답한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스님과 목사의 소동기인 ‘아, 사랑한담서?’도 만만치 않다. 물론 가슴을 뭉근하게 울리는 이야기도 있다. 21일 만난 그는 “글로 표현하지 않으면 쓱 지나가고 말 것 같은 순간을 담았다”고 했다.

 작품은 짧다. 손바닥만한 장편(掌篇) 26편이 실렸다. 폭죽 터지듯 삶의 반짝 빛나는 순간을 낚아챈다. 책 제목처럼 달과 나눈 정담이 읽는 이의 마음을 느슨하게 풀어준다. 때론 삶의 짙은 페이소스도 묻어난다.

 “달은 신화적으로 모성을 상징하잖아요.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줄 것 같았어요.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삶의 긴장된 순간을 이완시키며, 반짝 함박웃음을 주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제게도 꽉 조여져 있던 시간을 풀어주는 작업이어서, 즐겁게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애정을 담아 썼어요.”

 그가 경쾌한 작품을 쓰기로 마음먹은 건 늘 들었던 지청구 때문이다. 주로 무겁고 여운이 긴 작품을 써온 까닭에 독자들이 평상심을 되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 좀 재미있는 이야기를 쓸 생각은 없느냐는 ‘불만 아닌 불만’에 화답한 셈이다.

 “이번 소설집이 숨통 같은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긴장되거나 내팽개치고 싶은 순간을 다른 순간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거죠. 삶을 다르게 바꾸는 것은 내가 놓쳤던 웃을 수 있는 순간들, 우리의 마음에 퍼지는 페이소스 같은 명랑성에 있다는 생각을 더 절실하게 하게 되요.”

 그렇지만 삶의 비의를 담는 데 집중했던 그의 스타일은 쉽사리 바뀌지 않을 듯하다. “나 자신은 온전히 그런 (웃음) 쪽으로 넘어갈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앞으로는 양쪽이 서로 배척하지 말고 거울처럼 빛나게 해주면서 내 작품에 등장했으면 해요.”

 이제 장편에 집중하겠다는 그의 머릿속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무르익고 있다고 했다.

 “서로 연결되는 4개의 삶과 4개의 사랑 이야기를 옴니버스 식으로 보여주는 작품 하나와 어느 날 갑자기 앞을 못 보게 된 사람의 이야기가 마음속에서 갈등을 일으키고 있어요. 어떤 작품에 더 밀착해서 쓰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네요.”

하현옥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