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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2002]5. 탤런트 김영호

중앙일보

입력

설경구 혹은 최민수.

찰칵 찰칵, 필름이 한컷씩 돌아갈 때마다 그의 표정이 조금씩 살아났다.

후미진 골목길 안에서 무표정하게 서있을 땐 영화 '박하 사탕'의 삶에 찌든 설경구 같았다. 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벤치에 앉아 담배를 물며 씨익 웃어제치는 그는 어느 새 털털한 최민수에 가까워졌다.

김영호. 이름이 낯설다. 드라마 '바보같은 사랑'에서 배종옥을 개 패듯 두들기던 '나쁜 남자'가 바로 그다. 요즘은 '여우와 솜사탕'에서 유준상의 푼수 친구로 연기 변신을 했다. 두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그제서야 "아, 그 얼굴!"하고 고개를 끄덕일 게다.

"길을 지나다 보면 사인해달라는 사람이 많아요. 대부분이 다른 영화배우인 줄 착각한 사람들이죠. 하지만 기분 나쁘진 않아요. 아직 신인이니 욕심내면 안되잖아요."

올해 서른 여덟살인 그에게 '신인'이란 말은 좀 어색하다. 서열로 치자면 '노장'쯤 될법한데 TV에 나온 지는 3년밖에 안됐으니 그럴 만도 하다.

김영호는 뮤지컬과 영화계에선 10년 넘게 몸담은 베테랑이다. TV에 얼굴을 내민 건 다른 배우들이 그러하듯 "배가 고파서"그리고 "나를 알리고 싶어서"였다.

"뮤지컬에서 비중있는 조역을 맡아왔지만 항상 스타급 연기자에게 가려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습니다. 나를 알아주는 데가 있으면 무대가 아니라도 괜찮다고 생각했죠."

그는 청주에서 대학생 언더그라운드 가수로 활동하다 10년전 무작정 상경했다. 음반계를 기웃거리던 그는 극단 에이콤의 오디션에 노래 하나로 단박에 합격, 뮤지컬 '명성황후'의 이토 히로부미 역을 꿰찼다.

그간 영화에도 눈을 돌려 '태양은 없다''유령''신장개업'등서 개성있는 역할을 맡았던 그는 돌연 연기 연습을 한다며 자취를 감췄다.

"1년 동안 방안에 틀어박혀 연기 연습만 했습니다. 발음 연습, 시나리오 읽기, 감정몰입 등 미친 듯이 공부하다보니 연기라는 게 뭔지 어렴풋이 손에 잡히더군요."

그간 쌓아온 연기력을 폭발시킨 것이 바로 드라마 '바보같은 사랑'이다. 당시 깡패 역할을 실감나게 한 덕분인지 "원래 조폭 출신 아니냐"는 소리를 들어도 기분이 좋단다.

"연기의 매력요□ 철저하게 그 배역에 몰입하는 순간의 짜릿함이죠. 깡패든, 순진한 총각이든 연기를 하다보면 어느 새 그사람 자체가 됩니다. 그걸 사랑합니다."

연기 예찬론을 늘어놓는 그의 눈빛에선 더 이상 설경구나 최민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거기엔 자신의 세계를 열심히 구축하고 있는 연기자 '김영호'가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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