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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렸던 평화와 반평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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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66년의 세계는 무엇보다도 평화와 반평화의 신호가 지역적으로 각각 엇갈려 명멸하였었다는 특징을 갖는다.
여전히 세계정치의 주된 근간이 되고있는 미·소 관계를 먼저 볼 것 같으면 북폭확대로 경화됐던 그들의 사이도 후반부터는 새로운 융화속에 현저히 개선되기 시작했다. 자주개발사에 있어서도 올해는 특기할만한 해 이었다. 그중에서도 지난 11월「제미니」12호를 발사함으로써 일련의「제미니·시리즈」를 성공적으로 마친 미국의 경우는 차라리 경이적인 것이 있었다.
마침내 미·소는 그런 자주개발의 실적을 배경으로 12월에 이르러「유엔」을 통해 외기권에서의 핵무기 사용금지에 합의했다.
한편 구주대륙의 일반적 정세발전을 볼 것 같으면 기왕에 없이 동·서구가 접근을 시도하그 냉전질서에 수정을 가하는 노력을 쌓아 왔다. 그로인해「나토」체제와「바르샤바」체제는 각각 안으로부터 심각한 도전을 받는바까지 되었다. 3월의「라토」탈퇴에 관한「드골」 선언, 다시 그의 6월 방소 등이 그런 경세의 추이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그밖에도 기본적으로는 좌와 우와의 해후라고 할수도 있는 서독대연정의 수립도 있었지만 66년 한해를 통틀어 구주는 한마디로 화해의 분위기를 서로가 의식해서 양성해왔다 할 수 있다.
아뭏든 미·소 관계나 구주의 일반적 정세는 공존이라는 60년대의 시대적 물결을 충실하게 타고있었다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듯 평화에의 노력이 계속 기록되는 한편에는 반평화의 암영도 없지 않았다. 특히 전년에 이어 여전히 세계적 긴장의 초점으로 되어온「아시아」, 그 가운데서도 중공 인접지역은 한시도 전쟁의 먹구름을 씻을 겨를이 없었다. 월남전쟁이 그 집중적 표현이거니와 평화와 반평화의 문제에 있어서의「아시아」와 비「아시아」의 거리는 너무도 멀었다.

<세계속의「아시아」>물론 그렇듯 세계 일반이 이 시대의 특징을 말하여 주는 화해의 물결을 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아시아」만이 기존의 냉전적 질서를 심화시켜온 까닭은 당초부터 중공이란 위협적 존재가 긴장을 촉발시켜 왔었기 때문이다.
공존을 거부하고 전쟁을 불사하는 중공의 세기적 광포성은 따라서 태평양에 있어서의 부단하고 주요한 위험의 원천이 아닐 수 없었고 그 급진적 팽창주의의 촉수는 늘 불안을 불러 일으켜 왔다.
그래서「아시아」는 계속 세계적 긴장의 초점지대로 머물러 왔고 불운했다.
그러나 66년중에 그런 불운의「아시아」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중공이 홍위대의 난무속에 파묻히고 핵「미사일」을 개발하며 제3차 핵실험을 강행하는 등 세계의 평화적 여망을 짓밟는 동안「아시아」는「아시아」정세의 근본적 요청이 무엇이라는 것을 의논하고 규명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월남에서의 평화의 조건을 명시하고 월남문제가 결코 고립적·배타적인 문제가 아니고 태평양 전체사회의 문제라는 것을 선언하게되었다. 또한 안전과 안정에의 공동노력, 번영에의 협력강화를 다짐했다. 이러한「아시아」의 새 경지는 10월의「마닐라」회담에서 획기적으로 개척되었거니와 이것은 새 태평양시대의 개시라는 표현을 비는 것으로 됐다.
따라서 공통의 생각, 공동의 힘으로「아시아」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가자는 자조적 노력의 개시를 다짐하고 선언한 66년은「아시아」가 세계로 뻗는 중요한 시간적 의미를 가졌었다 할 수 있었다.

<정착돼야할 한국지위>그런데 그런「아시아」의 진전에서 중심적 내지 선도적 역할을 한 국가는 한국이다. 한국은 지난 6월「아시아」·태평양지역 각료 이사회를 통해, 다시 9월엔 「아시아」의원연맹총회의 서울 개최를 통해 『균형된「아시아」의 번영』과『하나의「아시아」』란 연대성을 강조했고 침략에 대처하는 공동의 노력을 촉구했다. 또「아시아」가 공통적으로 안고있는 내재적인 고민과 외재적인 침략의 위협을 강력하고 실효있는 단결로 극복하자는 호소를 거듭했다.
때로 그런 한국의 과잉할이만큼의 의욕은 좌절도 겪었지만 결국 그것은「아시아」가 66년의 모습을 구축하는데 있어서 선도적인 역할을 다하는 것이 되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한국을 비롯한「아시아」는 아직도 행의 단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의 단계에 있다.
뿐만아니라 현력의 문호도 아직은 비좁으며 이른바 「공통의 관심」사라는 것도 감각적으론 완전히 일치된 것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한마디로「아시아」라 하지만 그 지역은 너무도 광대하며 제국이 안고있는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이해관계도 복잡할 것이기 때문에 불가피한 듯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감각적 불일치는 상호협조와 이해의 터전을 참을성 있게 가꾸어 나감으로써 어떻게든지 극복되어야할 문제이다. 따라서 진실하고 실효있는「아시아」의 단합과 전진을 위해 한국은 현실을 보다 정확하게 계산하여야 할 것이며 과잉의욕을 절제함으로써「아시아」속에 차분히 정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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