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 개봉하는 옴니버스 영화 '사자성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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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국 사회에서도 성전환자(트랜스젠더) 는 큰 뉴스가 되지 않는다. 배우.탤런트.가수 등 전방위로 뛰고 있는 하리수의 근황에서 우리는 달라진 세태를 읽는다. 동성애자의 커밍아웃 선언에도 제법 익숙해 있는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성에 대해 완고하다. 남녀의 경계 허물기를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기 일쑤다. '강한 남성''착한 여성'의 콤플렉스가 아직 남아있고, 매춘에 대한 시각도 보수적이긴 마찬가지다.

젊은 독립 영화인이 인터넷 공간에서 '성'을 가지고 한바탕 '놀자판'을 벌인다. 28일부터 라이코스(http://lycos.co.kr), 바나나TV(http://bananatv.co.kr), 온키노(http://onkino.co.kr)등 10여개 사이트에서 개봉하는 '사자성어(四者性語) '가 그것. 신예 감독 네 명이 각기 다른 소재와 형식으로 우리 시대의 성을 얘기한다.

일단 배급면에서 화제다. 충무로 상업영화에 비해 유통의 한계가 뚜렷한 독립 영화인들이 온라인을 선택, 일반 관객에게 바짝 다가서고 있는 것.

열 곳이 넘는 사이트에서 동시 개봉하고, 일반 영화사인 스타맥스가 배급을 맡아 향후 인터넷이 독립영화의 대안 공간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을지를 시험할 예정이다.

편당 관람료는 5백원(전편 1천5백원) . 단편영화.플래시 애니메이션이 주로 상영됐던 인터넷에서 장편 옴니버스 영화가 처음으로 선보인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내용도 파격적이다. 오프 라인보다 금기.검열 등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장점을 살려 오늘의 성문화를 신나게 비튼다. 독립 영화계에서 나름의 입지를 굳힌 네 명의 감독들이 발랄한 재담을 풀어놓는 것.

예컨대 원조 교제를 풍자한 '굿 로맨스'로 지난해 한국독립단편영화제 대상을 받은 이송희일 감독의 '마초 사냥꾼들'. 성 폭행한 남성을 잡아다 여장을 시킨 후 인터넷에 올려 사회적 단죄를 꾀하는 페미니스트.레즈비언 등의 활동을 포착했다. 남성 우월주의에 대한 일침이다.

지난해 부산영화제 한국단편 선재상 수상작인 '샴, 하드 로맨스'를 연출한 김정구 감독의 '하지'는 오늘날 성의 교환 양식를 희화화했다. 맞선 첫날 아무런 감정 없이 몸을 섞는 남녀를 통해 밥을 먹듯 성을 소비하는 현대인을 클로즈업했다.

이밖에 뚱뚱한 40대 창녀와 소아마비로 뼈만 앙상한 소녀를 대면시키며 성과 몸을 관계를 조망한 '바디'(유상곤) , 변강쇠.춘향 등 고전소설의 인물들을 질펀하게 풍자한 '원적외선'(이기상) 이 상영된다.

김일권 프로듀서는 "일반 영화에 비해 완성도는 떨어질 수 있어도 상상력만큼은 탁월하다"며 "성에 대한 '비주류적' 시각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자성어'는 3월께 일반 극장에서도 개봉될 예정. 일부 원색적 표현,그리고 엽기적 발상 등으로 등급심의에서 논란이 일 수도 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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