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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운 세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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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해마다 그러하였지만, 올해 66년의 세모도 결코 조용한 것은 못 되는 것 같다. 그야말로 사람의 입김이 닿아 만들어진 인위적인 시간의 구속 속에서 사람들은 스스로를 초조하게, 그리고 부산하게 몰아치우고 있는 듯 하다. 해를 넘길 때마다 찾아드는 이세모의 어지러움, 이 상기한시간은 그런데 꼭 사회적 부산물을 남겼다. 올해도 그것에는 어김이 없다.
물론 세모에 들어서면 사람들은 그 시간의 구획에서 무엇인가 절도를 되찾아 보려는 추향을 갖는다. 한해생활의 발자취를 정리해 보려하고 거래관계에도 매듭을 지으려한다. 그래서 한해의 생활상, 사업장의 피로와 함께 무거운 정신적인 부담이 한꺼번에 들이닥치게 마련이다.
그러나 진실로 사람들이 정신적인 생활이나 물질적인 생황에서 절도를 구하려 한다면 이 상기되는 세모란 시간을 때늦게 활용하려 드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급작스러운 생활태도로 해서 그렇지 않아도 부산한 세모는 더욱 더 어지러워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벌써 우리의 주변에는 몇 가지 어지러움이 겹쳐 쌓여지고 있다. 세모의 허욕이 빚어낸 두개의 「갱」사건, 도범과 화마의 위협, 사회풍기의 급격한 문란, 폭력배의 대두 등 미처 꼽지 못할이 만큼 많은 불안의 요소들이 우리 둘레에 진을 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아직 총탄을 남겨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3인조 영등포은행 살인 「갱」의 존재는 직접적인 위협의 대상이다. 「카빈」총을 함부로 난사하는 고약한 버릇에다 경관1명을 살해하기까지 한 전력을 남기는 이 흉악범들이 아직도 잡히지 않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불안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물른 그 밖의 불안의 요소들도 결코 눅눅한 것은 못된다.
아무든 이와 같이 올해의 세모도 어김없이 어지러움이 겹쳐지고 있는 걸 숨길수가 없다. 그런데 또한 한편에선 터무니없이 들뜬 세모의 풍경이 사람들의 장막에 아프게 파고든다. 허례를 없이하자는 외침이 들려 온지는 이미 오랜 일이련만, 우리는 아직도 그 점에선 아득한 전근대적시점에 서있는 느낌이다. 뿐만 아니라 세모의 의미를 잘못 받아들이는 도에의 놀라운 「정신적 불신」이 날개를 돋친다.
따라서 「갱」을 잡아 시민의 불안을 덜어주는 일 못지 않게 세모를 당해 눈에 띄게 번식하는 이 정신적 불량성을 어떻게 고쳐 잡는가가 또한 긴요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위에서도 지적한대로 시간은 벼락스럽게 선용되는 것이 아니며 생활의 근도도 한꺼번에 갖추어지는 것이 아니다. 결국 그런 초조는 해악적부산물을 남길 따름이다.
한해의 발자취를 정리해 보고 새해의 밑거름이월 생활의 재 발언을 해야하는 이 귀중한 시간은 무엇보다도 착 가라앉은 침착성을 필요로 한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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