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날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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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영(46) 브레인자산운용 대표를 편한 자리에서 만날 때마다 그가 빼놓지 않고 언급하는 인물이 있다. 브레인 고문을 지내기도 했던 조재환 세계로선박금융 대표다. 지난번 江南通新과의 인터뷰에서도 간단하게 언급했듯이 조 대표는 박 대표가 펀드 매니저가 될 수 있게 도와 준 인물이다. (江南通新 3월 6일자 6~7면 )

박 대표는 “영국 속담에 ‘남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말이 있다”며 “조 대표가 나에겐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박 대표에게 인연에 대해 물었다.

글=안혜리 기자 , 사진=김경록 기자

얼마 전 영화배우 청룽(成龍·성룡)이 한 TV 오락 프로그램에 나와 육개장 얘기를 했다. 육개장은 그가 젊은 날 무명 시절 한국에 살 때 즐겨 먹던 음식이다. 청룽은 “육개장은 어려운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라며 “사람은 그때를 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문득 박 대표에게 조재환이란 인물은 청룽이 말한 육개장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박 대표를 처음 알아줬기에 평생 고마움을 갚아야 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그를 떠올림으로써 스스로 어려웠던 시절을 돌이켜보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늘 ‘내가 제일 잘나가’ 모드를 켜고 사는 박 대표지만 어떤 지점에서는 유독 인연을 강조한다. 그 점이 흥미로웠다. 다음은 인연에 관한 그와의 일문일답.

-조 대표와의 첫 인연을 말해 달라.

 “산은리스(산은 캐피탈)에 입사하자마자 지역 전문가 비슷한 걸로 대구에 내려갔다. 보통은 이렇게 발령 받으면 서울로 다시 못 올라온다. 하지만 나는 꼭 서울에 가고 싶었다. 윗사람한테 정말 잘했다. 같이 술 마신 뒤 음주운전하라면 그것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였다. 물론 일은 일대로 정말 열심히 했다. 그렇게 해서 요직인 자금부로 발령이 났다. 당시 자금부장이 조 대표다. 내가 일 하는 걸 지켜봤는지 자사주 매입이나 증자 등 기밀을 유지해야 하는 큰일을 나에게 맡겼다. 자금부, 아니 당시 리스회사라는 곳은 소위 명문대 출신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무 배경 없는 나를 알아봐 준 거다.”

-학연이나 지연, 뭐 그런 게 있었나.

 “전혀 아니다. 난 대구 출신으로 경북대를 나왔다. 조 대표는 전주 출신에 서울대를 나왔다. 내가 나중에 펀드매니저가 되겠다며 무작정 사표를 냈을 때 조 대표가 두 달 반 동안 내 이력서를 들고 다니며 자기 대학 선후배를 찾아다녔다. 그 덕에 내가 운용업계에 첫발을 내딛게 됐다. 그때 이 일은 평생 잊지 않겠다, 이렇게 나 스스로 약속했다. 지금은 조 대표가 선박회사 대표로 옮겼지만 만약 그 회사에서 나오면 다시 우리 고문으로 모실 거다.”

-운용업계에 가서 잘할 거란 믿음이 있었던 모양이다. 산은리스 시절 주식을 어떻게 공부했나.

 “회사 보유 주식을 파는 일을 했기 때문에 회사 업무상 주식 단말기를 내내 들여다봐야 했다. 이론 공부도 했다. 펀드매니저 자격증도 따고 투신협회에서 하는 7주짜리 야간 강의도 들었다. 그게 실제 업무에 도움이 된 건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인연을 만들었다. 당시 윤리 교육 강사가 이원일 전 알리안츠 자산운용 대표다.”

-펀드매니저로서 첫 회사인 밸런스주식투자자문에서 뛰어난 성과를 냈다. 2004년 미래에셋자산운용엔 어떻게 가게 됐나.

 “원래 옮길 생각이 없었다. 아무리 작은 회사라지만 서른일곱 나이에 최고투자책임자(CIO)에 상무까지 올랐다. 잘나가고 있는데 굳이 옮길 이유가 없었다. 서초동에 살 때였는데 새벽 5시에 담배 피우러 집 밖에 나왔다가 미래에셋 창업 공신 중 한 사람인 구재상 전 미래에셋 부회장과 마주쳤다. 구 전 부회장이 ‘이거 봐라, 우린 인연이다’라고 하더라. 옮길 때 조건은 딱 하나였다. 대표 펀드인 디스커버리를 달라는 거였다. 그런데 일단 옮긴 후 잘하면 주겠다더라. 무조건 당장 달라고 버텼다. 그렇게 디스커버리를 맡았다. 당시 미래에셋은 펀드 수익률이 좋지 않아 고전 중이었는데 전에 하던 대로 대형주를 9%씩 꽉 채우는 방식으로(※공모 펀드는 한 종목 비중이 10%를 넘을 수 없다) 베팅했다. 그게 먹혔다. 그 다음해 때마침 ‘주식으로 저축하라’는 적립식 펀드 바람이 불면서 미래에셋에 돈이 몰려들었다.”

-운용업계는 유독 명문대 출신이 많다. 학맥이 없어 아쉽다고 느낀 순간은 없었나.

 “내가 미래에셋에 다닐 당시 구 전 부회장을 비롯해 연세대 출신이 많았다. 박현주 회장은 고려대 출신이다. 하지만 박 회장이나 구 전 부회장 모두 학연·지연 같은 걸 전혀 따지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자문사 펀드매니저가 운용사로 옮기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학벌 아니라 아무 출신 안 가리고 능력만 보고 나를 데려간 거다. 미래에셋이 살아 있었던 거다. 하지만 그때도 아쉬운 점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이 업계가 펀드매니저와 주식 브로커, 애널리스트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돌아가는 곳 아닌가. 사적 관계에 불과하다지만 학교 선후배라면 아무래도 정보의 흐름이 원활할 수밖에 없다. 명문대 출신이 주도하는 시장에서 지방대 출신이 뿌리 내리는 게 쉽지 않았다. 난 지역 덕도 보지 못했다. 운용사 오너십을 가진 사람치고 경상도 출신이 별로 없다.”

QR코드를 찍으면 박건영 브레인 자산운용 대표의 첫번째 인터뷰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브레인엔 유독 서울대 출신이 많다는 얘기가 들린다.

 “맞다. 천하의 박현주 회장이 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미래에셋 회장을 하면서도 자신은 늘 ‘을’이었다는 거다. 사업은 그렇게 모든 걸 걸어야 한다. 독하게 했다. 창업 초기엔 연세대 출신이 많았는데 대부분 못 견디고 다 나갔다. 창업을 같이 할 정도면 얼마나 서로 믿고 신뢰하는 사이였겠나. 그런데 다 갈라섰다. 회사는 컸지만 많은 걸 잃은 셈이다. 이후 공채로 뽑은 직원은 중국 칭화대 출신 한 명을 빼고 전부 서울대 출신이다. 공채할 때 우리 회사 홈페이지뿐 아니라 서울대 등 6개 대학에 원서를 뿌린다. 출신 대학을 많이 섞으려고 노력하는데 결과가 이렇게 됐다. 실은 첫 공채 입사자가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이었다. 이 직원이 계속 후배를 데려왔다. 이런 걸 보면서 스스로 위안을 얻기도 한다. 내가 정말 같이 일 못 할 사람이라면 친한 선후배를 이 회사에 데려오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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