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일진그룹 합작투자금 150억 국제중재로 지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공업용 다이아몬드와 LCD패널 등 부품·소재 전문기업인 일진그룹 간부들은 지난해 1월 캐나다에서 날아온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계열사인 일진라이프사이언스를 통해 거금을 투자한 캐나다 신약개발 회사 아이소테크니카 측에서 보내온 거였다. 이 회사가 일진과 맺은 장기이식용 면역억제제인 ‘보클로스포린(Voclosporin)’의 글로벌 판매 라이선스 계약을 해지한다는 통보였다. 설상가상으로 신약 개발자금으로 총 300억원을 투자키로 하고 이미 지급한 150억원도 반납하지 않겠다고 했다.

 발단은 신약 개발을 위한 3상 실험이 핵심 물질 확보의 어려움 때문에 지체된 것이었다.

 그러자 일진은 “신약 개발이 지체된다”는 이유로 매년 일정액을 나눠 지급하기로 한 잔금 150억원을 주지 않았다. 이에 격분한 아이소테크니카 측이 계약서 말미에 포함된 ‘개발금 미지급 시 계약은 해지된다’는 조항을 들어 계약해지를 통보한 거였다.

 일진은 곧바로 김앤장 국제중재팀(팀장 윤병철 변호사)을 찾아갔다. 이 사건을 맡은 정교화(41·여·사법연수원 28기) 변호사는 국제상업회의소(ICC) 국제중재법원에 중재를 제기하면서 신약 라이선스를 경쟁사에 넘기지 못하게 가처분 신청을 동시에 냈다.

국제중재사건에서 가처분 신청은 이례적인 것이었지만 중재재판부는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신청 4개월 만에 일진 측 손을 들어줬다. 정 변호사는 이후 계약해지의 부당함을 입증하는 데 주력했다. 계약서에 포함된 ‘개발금 미지급 시 계약은 해지된다’는 문구가 계약서 전체 취지에 맡지 않는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신속성을 필요로 하는 신약 개발의 특성상 빠른 판정을 얻어내기 위해 추석 연휴도 반납하고 증거자료를 수집했다.

결국 중재절차가 시작된 지 8개월 만에 “계약해지는 부당하고 라이선스를 돌려주라”는 판정을 얻어냈다. 통상 2년이 걸리는 걸 단축시킨 것이다. 일진은 천신만고 끝에 150억원의 기존 투자금과 신약에 대한 라이선스를 동시에 날릴 뻔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박민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