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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박·존슨 대통령의 통역 크레인 박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믿음에 몸 바치겠습니다. 돈을 벌려고 생각했다면 이곳에서 잠깐 근무하다가 벌써 그만두었을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과 「존슨」대통령의 통역을 맡았던 「폴·S·크레인」(47)박사는 그의 생활신조를 이렇게 말했다.
지난번 「존슨」대통령방한 때 『공산군 내려오실 때』라고 통역하여 한 때 화제에 올랐던 그가 박대통령의 두 차례에 걸친 미국방문 때 대통령의 공식통역관으로서 수행했으며 「마닐라」정상회담에도 대통령을 동행했다. 또 지난번 「존슨」대통령의 방한 때 통역을 담당, 한·미간 대화의 가교 역을 맡았었다.
한·미 양국원수의 체온을 가까이 느끼며 중책을 무난히 해낸 「크레인」박사는 그때 감격을 한마디로『벅찬 임무였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최고회의의장 때는 검은 안경을 쓰고 미국에 가셨는데 국가를 대표하여 외국에 처음 나가서 그런지, 어떻게 할까 몹시 걱정하는 빛이었으나 두 번째 육 여사를 모시고 갔을 때는 모든 몸가짐이 능숙하여 미국국민들에게 인기가 좋았습니다』고 「크레인」박사는 그 당시를 회상했다.
「존슨」대통령의 시청광장연설통역 중 「공산군이 내려오실 때」라고 하여 노소를 자아냈던 이야기(괴로운…)를 꺼내자 「크레인」박사는 얼굴을 붉히면서 『정말 실수가 컸습니다.「존슨」대통령의 즉흥연설 때문에 힘들었지요. 대통령과 좀 떨어져 서 있었기 때문에 연설내용을 똑똑히 알아듣기 힘들어 그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실수했습니다』고 설명해준다. 「크레인」박사는 이해를 보내는 소감을 『금년은 병원확장을 위한 모금 일로 바빴지요. 35년에 건설된 이 전주예수병원은 겨우 환자 1백50여명 수용능력 밖에 없어요. 병원확장을 위한 모금운동을 미국과 서독 등에서 벌였습니다. 지금 설계증인 「메디컬·센터」는 공사비가 3백50만 「달러」정도 드는데 완성되면 좋은 시설이 될 것』이라고 했다.
44년 「존스·홉킨즈」대학교 외과대학을 나와 48년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한국에는 혈액은행하나 없었고 한국사람들은 피를 빼거나 넣으면 죽는 줄로만 생각하고있었다』고 그 당시를 회상했다. 그래서 「크레인」박사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일은 그 당시 폐 수술을 받아야 할 환자가 생겨 환자가족의 채혈을 약속 받고 수술했는데 수술 후 그 가족은 채혈을 거부, 환자는 피 부족으로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환자가족들이 몰려와 수술타 환자를 죽였다고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경찰까지 동원되었었다한다.
「크레인」박사는 또 『온 국민이 유교사상을 벗어나 가족위주의 생각을 버리고 나라위주로 생각해야 한다』고 뼈있는 한마디-. 「크레인」박사 슬하엔 6·25때 부인이 일본에 피난가 낳은 아들까지 2남3녀가 있다. 겨울이면 사냥도 가고 여름이면 가족을 동반코 근처 호수에 풍선놀이를 즐기고 백제의 옛성터를 돌아본다는 것이 즐거움이라고. 우표수집이 취미인 「크레인」박사는 전주우취문화회 명예회장이기도 하다.
심장외과가 전문인 「크레인」박사는 새로 병원이 확장되면 현대적 심장외과시설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부푼 꿈을 말해주며 다가 숲 속에 밀려드는 환자들로부터 배웠다는 전라도 「액센트」가 곁들인 유창한 한국말로 끝까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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