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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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남의 밭에 자란 콩이 제 밭의 콩보다 더 굵어 보인다는 속담이 있다.
과연 그럴듯한 말이라고 생각된다.
생긴지 얼마 안되는 학문을 공부해서 그런지, 나는 과학사를 하기 시작한 후 지금까지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보는 때가 있다.
철학사, 사상사, 미술사, 경제사, 문학사, 어학사, 정치사, 교육사….
별의별「사」가 많다. 아마도 학문은 저마다 그 분야의 역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또 사실 대학에서도 미술학과에서는 미술사를, 철학과에서는 철학사를, 정치학과에서는 정치사를, 경제학과에서는 경제사를 꼭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자연과학을 전공하는 학과에서는 과학사를 거의 가르치질 않는다.
이상한 일이다.
과학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20세기는「과학의 시대」라고들 하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결론부터 말해보자.
오늘 우리나라 과학기술 개발의 첩경이 무엇인가를. 내 생각은 먼저 그에 앞서 선행되어야할 기초작업이 있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무엇이 우리나라의 과학과 기술의 수준을 지금과 같은 것으로 만들어 놓았는가를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먼저 해야할 일은 우리의 지난날의 과학과 기술이 어떻게 발전해왔는가를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조시대까지의 옛 과학사도 그렇겠지만, 해방전 일제하의 과학과 기술정책, 그리고 해방 후 20년의 과학기술 발전과정과 그 정책의 분석비판이 반드시 있어야만 하지 않을까.
그래야만 우리는 우리 나름의 과학기술의 방향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정부에서 발표한「제2차 과학기술진흥5개년 계획」에서 나타난 문젯점들은 그러한 역사적 현실을 잘 반영해 주고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뒤떨어진 분야들은 이조시대부터 뒤떨어졌던 기계, 조선, 금속 등의 중요기술부문이라고 지적되고 있으며, 반면에 예부터 진보됐던 토목, 건축 및 요업의 분야는 외국에 비해서 별로 손색이 없는 기술적 진보를 이루고 있다고 평가되었다.
경제기획원에서 나온 그 책자를 보고 나는 과학과 역사가 묘하게도 얽혀있다고 생각해 봤다.
정부가 내년부터 과학기술부를 둘 방침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나는 곧「과학과 역사」의 관련성을 거기서 알아주었으면 하는 기대를 가질 정도였으니 아마도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속담도 맞는가보다. <김상운(성신여사대 교수·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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